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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은 들어갈 때까지 던지면 된 다
@tmiiscake
티미
아, 원래 잘 들어가는데 오늘따라…….
기상호가 박병찬을 만나 슛 연습을 한 것은 오늘로 딱 열두 번째가 되는 날이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씩, 서로의 경기가 없는 휴일에 만났으니 거의 일 년이 되어 가는 일정이었다. 기상호는 이를 기념하자며 훈련의 성과를 보여준다는 결의를 갖고 박병찬을 자신만만하게 아파트 단지로 불러내었으나, 공은 한 번을 들어가는 일이 없었다. 다시 한번 던져도, 공은 림과 백보드 사이에 맞아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상호는 어색하고도 머쓱한 마음에 공을 튕기다 잡고 병찬을 돌아보았다. 병찬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상호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고개를 살짝 숙이고 마른침을 삼키던 상호는 괜히 공을 두어 번 더 바닥에 튕겼다.
더블인데?
- 햄, 슛 폼 보는 데에 더블이 어디 있어요?
슛은 농구 아니냐?
가벼운 실랑이를 하며 어색한 공기가 조금 풀렸다. 어느새 상호 옆으로 다가온 병찬은 손을 내밀고 있었다. 상호가 가볍게 바닥에 공을 튕겨 병찬에게 패스해 주면, 병찬은 깔끔하게 공을 던져 넣었다. 공이 링조차 맞지 않고, 그물에 걸려 가볍게 철썩이는 기분 좋은 소리가 났다. 와, 상호의 입에서 감탄과 탄식이 섞여 나왔다. 그렇게 넣어 버리면 변명으로 내놓을 핑계도 없어지는데. 점점 작은 소리를 내며 굴러가는 공을 바라보던 상호는 병찬이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 뭐예요 햄?
너 방금 한숨 쉰 거 아나 해서.
- 어라, 전혀 몰랐어요.
안 되겠다.
- 네?
어휴, 소리를 내며 발을 옮긴 병찬은 다시 공을 주워 왔다.
상호 너, 작년에 합동훈련 때 기억하고 있지?
- 당연히 기억하고 있죠. 그때 제 이름 처음 아셨잖아요.
아니거든. 대강 알아두는 것보다 정확히 알고 싶었을 뿐이야.
- 그때나 지금이나 대사 간지러운 건 여전하시네…….
그러면 그전에도 이름을 대충은 알고 있었다는 건가. 인정받았다는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아서 상호는 헛기침을 두어 번 했다.
- 갑자기 그때 이야기는 왜 꺼내세요?
실력이 그때랑 다를 것이 없다고 이야기하려나? 아니지. 기상호가 알고 있는 박병찬은 그런 이야기를 사람이 아니었다. 정말 저번 열한 번째 연습 때까지는 제법 잘 들어갔으니깐… 아마도. 조금씩은 발전하고 있으니 박병찬도 계속해서 기상호를 만나 주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상호는 그런 결론을 내리고 오늘은 병찬에게 결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감독님이 경기마다 짜시는 전술이 경기에서 제대로 먹히는 만큼만이라도 상호의 인생이 계획대로 흘러가면 좋을 텐데. 상호는 공도 병찬도 괜히 야속해져 흠, 하고 숨을 내쉬었다.
그때 네가 너네 슈터한테 봐달라고 하기엔 조금 무서우니 슛 봐달라고 했잖아.
- 그랬죠.
근데 경기 때에 나를 막은 건 그 친구가 아니라 너였는걸.
어른이 되면 다들 교훈을 주고 싶어 하는 것일까? 준수는 입이 험하긴 해도 본론이 바로 나와 대화가 쉬웠지만 병찬은 아니었다. 상호는 눈을 가늘게 뜨며 병찬이 꺼낸 말의 의미를 가늠해 보다가 손을 뻗었다.
- 생각이 바뀌었어요. 햄이 더 무서운 것 같아요.
하하, 그래?
병찬은 씨익 웃어 보이고는, 내민 손에 공을 건네는 대신 상호에게 잠시 물러나라는 듯 손짓했다. 조금 전에 둘이 서 있던 위치가 정반대되었다.
자, 이제 네가 내 슛 던지기를 봐주는 거야.
- 예? 제가요?
왜, 못 하겠어?
- 그야 형은 이제 저와 노는 물도 다른데 제가 감히 어떻게 평가해요?
경기할 때는 누구보다 상대를 열심히 분석하면서 이건 못 하겠어? 슛 던지기도 농구라니깐.
두어 번 더 실랑이한 끝에야 상호는 병찬의 슛 폼을 보기 위해서 골대로부터 조금 떨어진 가로등에 기대어 섰다. 사실 병찬이 공을 던지는 모습이야 수십 번, 아마 적어도 백 번 이상은 보았던 상호였다. 경기 구경을 가서도 보았고, 병찬의 실력이야 어느 경기에서도 빛을 발했으니 출전 경기 영상만 있다면 병찬의 슛을 얼마든지 반복해서 볼 수 있었다. 늘 병찬의 경기를 기대하고 응원하느라 지겹도록 보았다고, 사실 이젠 더 이상 새롭게 할 감상도 없다고 할까 - 라는 고민을 하는 순간 병찬의 공이 골대에 들어갔다. 병찬의 돌파 방향이나 선호하는 슛 각도 정도는 대략 알고 있었는데, 탁 트인 공간에 서 있는 병찬은 정말 간만에 보는 모습이었다. 손안에 잡혀 있던 공이, 공중에 가벼이 떴다가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며 몇 번이고 그물을 통과했다.
그래서, 감상은?
반박이라도 할까 싶었는지, 온갖 방향에서 공을 놓치지 않고 던져 넣은 병찬이 공을 옆구리에 끼고 상호 앞으로 걸어왔다. 어느새 바닥에 앉아서 병찬을 구경하고 있던 상호의 얼굴 위로 그림자가 졌다.
뭐야. 자기 건 봐달라고 하고 내 슛은 안 봐준 건가?
- 아니에요, 확실히 봤어요. 제가 보기엔… 햄 공엔 흔들림이 없어요. 슛에 확신이 있는 것 같다고 할까요.
안 들어간 것도 두어 개 있었는데.
- 다시 넣어서 들어갔잖아요? 저는 단순히 지켜보기만 할 뿐인데도… 햄 공은 안 들어가면 다시 넣으면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상호 치고는 굉장히 감성적인 분석이네.
- 아니, 갑자기 내보고 슛을 분석하라 하니깐 어색해서 그러죠…….
상호야.
예? 갑자기 이름이 불린 상호에게 병찬은 공을 쥐여 주었다. 그래도 보여주고 싶었던 걸 다 본 걸 보면 괜히 수비 스페셜리스트라 불리던 게 아니구만, 하면서 어깨를 두어 번 토닥거렸다. 이제 수비 ‘스페셜리스트’가 아니라고 상호가 볼멘소리를 내자 병찬은 골 하나도 못 넣지 않았냐고 가볍게 맞받아쳤다.
말했지, 너는 에임이 구데기라니깐. 근데 농구가 볼 넣는 횟수에 제한이 있는 게임이냐고. 생각을 해. 그리고 던져. 남을 관찰하는 건 뭐라도 쥐어짜내서 발견하는데 왜 정작 본인 플레이는 남한테 봐 달라고 하는 거야?
- …….
여러모로 할 말이 없어진 상호는 공을 든 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몇 번 공을 던지는 시늉을 하며 병찬이 던지던 것과 본인의 각도를 비교해 보다, 이내 결정을 하고 공을 던졌다. 통, 백보드에 한 번 맞은 공이 무난하게 그물 안으로 들어간다.
거봐, 들어가지?
- 또 넣으면 안 들어갈 수도 있을걸요. 오늘 감이 영이라…….
그럼 들어갈 때까지 넣으면 되지 뭐가 문제야.
참 한결같은 사람이다. 하긴, 저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기어코 농구로 본인의 앞길을 개척해 나가는 사람이겠지. 이번 경기가 아니면 대학에 못 간다고 이야기하던 병찬이 문득 상호의 눈앞에 떠올랐다. 그리고 코트 위에서 마주했던 두 눈동자와 호흡. 상호가 보기에 그때 병찬에게 간절했던 것은, 대학이 아니라…….
- 첫사랑 같네요.
뭐가?
- 보답받지 못해도 계속 좋아하고, 또 시도해 봐야 한다는 점에서요. 첫사랑이라고 할 만큼 두근거리거나 가슴이 아린 경험을 못 해봤다고 생각했는데, 저랑 형한테는 농구가 첫사랑인 것 같아요.
… 너는 그렇다 쳐도 왜 내 첫사랑까지 농구로 만드는 거야?
- 아닌가요?
그냥 계속 많이 던져라, 는 말을 나름 선배랍시고 다르게 돌려 말하던 중이던 병찬은 양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첫사랑이 농구라니. 병찬은 반박할 만한 사례가 있나 싶어, 잠시 자신이 만나온 사람들을 떠올려 보았다. 사람에게 깊은 애정을 느껴 본 적은 있지만 인생을 걸어 볼 만한 사람은 없었다. 반면에 농구라면, 한 번 포기했다가도 결국엔 다시 그 앞으로 돌아올 만큼 매력적이고 원망스러웠으리라. ‘첫사랑’을 농구라고 하기엔 사회적으로 많은 합의가 다시 이루어져야 할 것 같았지만……. 상호가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지는 알 것 같아서 병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걸로 하자. 그래도 웬만하면 남에게 첫사랑 이야기를 할 때는 사람을 골라 봐.
- 사람이라고 해도, 내를 꾸준히 만나 주는 건 형들 말고는 햄뿐인데요.
…….
잠시 말이 없던 병찬은 이만 밥이나 먹으러 가자며 상호에게 고갯짓했다. 잠시 서서 어깨를 으쓱이던 상호는 그 뒤를 따랐다. 병찬의 말대로 계속 많이 던지다 보면 하나는 들어갈 것이다. 들어가지 않으면 다시 던지면 그만이고.
방금 건 들어갔나?
병찬이 알려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상호는 병찬의 옆에 붙어 걸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