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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ura_shark
쨔무

기상호보다 큰 손이 기상호의 어린 손위를 덮는다. 그렇게 농구공을 쥔 기상호의 손을 이끌어 림을 향해 슛을 쏜다. 공이 높이 날아가다 바닥을 구른다. 데구루루...

 

“아이쿠... 아직은 어려서 그런가 잘 안 날아가네. 좀 더 크면...”

 

기상호의 뒤에서 농구를 가르쳐주던 사람이 무어라 말했다. 그 사람의 품에 안겨 그의 옷에서 나는 섬유유연제와 땀 냄새가 코로 들어왔다. 뒤를 돌아보면, 꿈은 항상 거기서 끝났다.

 

 

 

.

 

 

 

 

“쌍호! 마, 니 또 수업시간에 잤나.”

“아, 희차이가. 어... 뭐, 글치. 어젯밤에 숙소에 대왕모기가 출현했는데, 햄들이랑 다같이 잡는다고 숙소를 뒤집어 엎어가꼬...”

“그래도 수업시간에 자면 쓰나. 마, 일어나래이. 밥 먹으러 가자. 훈련 늦으며 준수햄이 또 화낸다이가.”

“엉. 가자 희차이.”

 

기상호는 눈을 쓱 비비고 일어나며 입을 쩍 벌려 하품으로 입맛을 다셨다. 꿈을 꾼 거 같은데... 상호 니 꿈 꿨나? 아.. 어. 뭔 꿈인지는 잘 기억 안 난다. 꿈이 다 그렇지 뭐. 내 배고프다. 퍼뜩 오래이 상호. 희차이 간다 가. 보채지 좀 마라. 고개를 좌우로 돌려가며 스트레칭한 기상호는 생각했다. 아... 그 얼굴 한 번만 보면 전부 다 기억이 날 것 같은데. 점심은 제육볶음이었다. 산처럼 쌓아 제육볶음을 받아 돌아온 기상호는 밥에 제육볶음을 올려 덮밥을 만들면서도 꿈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누구였더라...

 

“쌍호, 니 아직도 그거 밖에 못 뭇나! 언제 다 먹을라꼬?”

“먹고 있다. 먹고 있어. 희차이.”

 

기상호가 울상을 지으며 밥을 푹푹 퍼 입으로 밀어 넣었다. 벌써 점심시간이 절반이나 지나가 있었다. 정희찬과 헤어지고 교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매점에서 사온 피크닉을 쫍 빨아먹으며 생각했다. 다시 자면 꿈을 이어서 꾸지 않을까? 하지만 4교시에도 잠을 잤는데 5교시에도 잠을 자기엔 조금 양심이 찔렸다. 운동한다고 공부를 다 내팽겨칠 수는 없는 노릇이니, 피크닉을 쓰레기통에 골인하면 자고, 골인하지 못하면 자지 말자. 결과는... 실패였다. 심기일전해서 던진 피크닉이 쓰레기통에 맞아 바닥에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는 침울해졌다. 일어나 피크닉을 주우러 가는 기상호를 바라보는 시선이 있었다. 반 친구의 얼굴에는 ‘농구부가 쓰레기통에 쓰레기도 못 넣어?’ 라고 쓰여 있었다. 기상호의 속이 쓰라렸다. 그리고 만약 준수햄이 봤으면... 하는 상상을 했더니 기분이 바로 바닥을 쳤다. 3점 열심히 연습해야지.

 

결과는 꽝이었지만, 잠은 자고 싶어서 그냥 오늘만 자자, 라는 심정으로 기상호가 책상에 엎드리려던 순간이었다. 문을 활짝 열고 들어오는 인영이 보였다. 바로 수업시간에 잠자는 걸 용납하지 못하는 영어 담당의 학주였다. 들어오면서 엎드리려는 놈들 다 일어나! 하고 소리치는 것이 이번 시간엔 자기 정말 글렀다고 생각했다.

 

“오늘 10일이지. 10번. 일어나서 오늘 영어 지문 읽어라.”

 

기상호는 오늘 재수가 없어도 이렇게까지 없을 수는 없는 법이라고 생각하며 급하게 서랍을 뒤져서 교과서를 꺼냈다.

 

“People don’t usually think of touch as a temporal phenomenon. but it is every bit as time-based as it is spatial...”

 

영어지문에 모든 기를 빨리다 보면 지루한 수업시간의 끝을 알리는 종이 쳤다. 기를 빨린 채로 오후 훈련을 가자니, 없던 기가 더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오늘 낮 최고 기온이 30도인데... 이대로 훈련이라니.

 

어김없이 훈련이었다. 몸이 뻗뻗해서 안 찢어지는 다리를 찢고 뒤에서 눌러주며 눈물 머금은 채로 더 찢고 나면 또 뛰어야 했다. 그럼 또 뜨거운 운동장 위에서 뛰고, 뛰고 또 뛰어서 체육관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들어가서 또 드리블을 연습하고 사람이 기진맥진해졌을 때, 잠깐의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며 숨을 급하게 몰아쉬다 보면 온몸의 긴장이 풀려서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이게, 다 어제 모기 소동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자서... 속으로 억울하다고 투덜거리다가 기상호는 정말로 잠들어버렸다.

 

 

.

 

 

 

“아이쿠... 아직은 어려서 그런가 잘 안 날아가네. 좀 더 크면...”

“얼마나 크면 넣을 수 있어요?”

“그러게... 음... 중학생이 되면?”

 

그토록 보고 싶었던 뒤를 보는 순간이 왔다. 결국 뒤를 돌았는데, 보이는 건 까만 티셔츠뿐이었다. 여기서 조금만 더 고개를 들면 보일 것 같은데... 조금만 더 고개를 들면... 조금만 더... 그렇게 자신이 고개를 들길 기다리던 그때, 눈이 번쩍 뜨였다.

 

“야, 야. 기상호., 상호야. 너 지금 잠이 잘도 오나보다? 빠져가지고는. 안 일어나?”

 

눈앞에 보이는 얼굴은 바로 성준수의 빡친 얼굴이었다. 그토록 무거웠던 눈꺼풀이 탁 트였다.

 

“훈련 중에 잠이나 처자고... 이제 농구에 자신있나보다? 안 일어나?”

 

쌍용기를 거치면서 성준수와 꽤나 가까워졌다고는 해도 이 상황은 전적으로 기상호의 잘못이 맞았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3점 슛을 봐주겠다는 성준수에게 끌려가 성공률이 4할이 될 때까지 붙잡혀 있어야 했다. 이젠 농구공을 들고 팔을 드는 것만으로도 후들거리는 게 느껴졌다. 이건 무조건이다. 무조건 내일 근육통 온다. 기상호가 울상을 지으며 팔을 주물렀다.

 

 

.

 

 

 

씻고 나와 핸드폰을 충전기에 연결하고 바닥에 누워 핸드폰을 보면 카톡 알림이 쌓여있는 것이 보였다. 박병찬이었다. 기상호가 헤실헤실 웃으며 카톡 알림을 눌렀다. 박병찬과 연락하기 시작한 건 쌍용기 전 조형고와의 합숙 훈련이 끝난 이후부터였다. 엄청난 대화들을 하는 것도 아니었고, 서로 운동을 하느라 바빠 며칠에 한 번씩 답장이 오고 갈 때도 있었지만 기상호는 그것으로도 족했다. 다른 고등학교의 선수와 연락하며 교류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신이 농구인에 가까워졌다는 약간의 설렘이 있었다. 그 상대가 그 누구도 아닌 박병찬이라서 더욱 그랬다. 서로의 카톡 답장이 느린 것 쯤이야 얼마든지 상관없었다. 유스 캠프에서 함께 훈련하며 이전보다 친해졌다고 생각했고, 곧 조형고와의 합숙 훈련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엔 조형고가 부산으로 내려오는 합숙 일정이었다. 10월 전국체전을 눈앞에 두고 서로의 기량을 확인하기 위한 3박 4일의 꽤나 긴 합숙 훈련이었다.

 

“부산이라 더 더울 줄 알았는데, 인천이랑 별로 안 다르네?”

“부산이랑 인천이랑 차이나봐야 얼마나 난다고... 부산도 사람 사는 데에요.”

“형아가 인천 촌놈이라 그래. 상호가 이해하자.”

 

버스에서 조형고의 농구부원들이 내렸고, 기상호는 박병찬을 마중 나갔다. 도란도란 카톡으로 했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다시 나누다 보면 체육관이었다. 짐을 다 풀고 나면 조형고와 지상고의 연습게임이 진행되었다. 결과는 지상고의 승리. 점수 차는 딱 3점 차이였다. 1쿼터와 2쿼터에서 비등바등한 점수 차이를 유지하다가, 3쿼터에서 박병찬이 투입되면서 점수 차이가 벌어졌다. 박병찬이 3쿼터를 풀로 뛰고, 4쿼터에는 벤치로 들어가며 기상호의 슛감이 살아났다. 오늘은 탑과 윙에서도 코너만큼의 성공률이 나왔다.

 

“오, 오... 오오오!!! 이것이 바로 기상호의 농구입니다...!!”

“훗, 최종병기 아기상호, 드디어 실력을 드러내기 시작한건가...!”

 

기상호의 플레이를 보다 못한 박병찬이 이규후를 졸랐다. 지금 경기 시간도 딱 2분 남지 않았느냐며 그렇게 떼를 쓰던 박병찬은 결국 4쿼터 후반 코트에 투입되었다. 그렇게 기상호와 매치업하게 된 박병찬. 점수 차이는 81점대 79점으로 2점 차이. 경기 종료까지 2분 남짓에 한 포제션 차이였다. 공격권은 지상고에게 있었지만 2점을 뒤집기에는 차고 넘치는 시간이었다. 계속해서 서로의 수비에 막혀 1분 동안을 옥신각신하던 조형고와 지상고. 결국 박병찬이 특기인 드리블과 유로스텝으로 지상고로부터 볼을 긁어내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바로 속공으로 혼자서 레이업으로 2점을 득점해내는 박병찬. 동점. 그리고 바로 이어진 지상고의 백코트에서 이어진 기상호의 코너슛. 컨테스트에 막혀 살짝 빗나간다. 리바운드 싸움의 승자는 조형고였다. 조형고의 마지막 공격권이었다. 박병찬이 느긋하게 공을 튕기며 시간을 보냈다. 4초가 지나고, 그리고 박병찬이 뛰었다. 기상호가 돌파 방향을 예측해 막아서도 박병찬의 이미 다 만들어진 다부진 몸으로 부딪히는 포스트업에 기상호는 조금씩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돌파. 그 앞을 다시 막아서는 빅맨들의 스크린. 박병찬이 코너의 이초원을 보고 패스하는 순간, 공 앞에 기상호의 손이 들어왔다. 그렇게 다시 긁어낸 공. 기상호가 전력으로 질주해도 박병찬이 뒤에서 바짝 쫓아와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달리는 판국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박병찬의 컨테스트. 샷클락은 꺼졌고, 남은 시간은 6초. 다른 누군가에게 패스할 길도 없었다. 앞에서 자신을 압박하는 박병찬의 기세에 움츠러들 법도 했지만, 쌍용기를 겪은 기상호는 이전의 기상호보다 더 담력이 커져 있었다. 빠른 박병찬의 점프 컨테스트, 기상호의 위치는 탑. 살짝 물러나서 던지는 풀업 점퍼. 결과는 성공적, 굿샷. 기상호의 위닝샷이었다.

 

게임이 끝나고, 치열했던 승부에 모두가 지쳤다. 그 가운데 지상고의 멤버들이 마지막 위닝샷을 해낸 기상호에게 다가와 머리를 쓰다듬고 등을 두드리며 한마디씩 했다.

 

“쌍호 니 오늘 뭐 잘못 뭇나? 3점 성공률 미쳤데이.”

“the 기상호 3점 Machine의 출동인거임?”

“야야, 그러니까 하면 되잖아. 10월 전국체전까지 3점 연습 메뉴 안 바꾼다.”

 

마지막 한마디에 기상호의 기쁜 얼굴이 한순간에 울상으로 바뀌었다. 준수햄.. 근데 그건 쪼매... 힘들 것 같은디요... 그거 보다는 좀 줄여주심이... 뭐래? 니 오늘 3점 성공률을 봐라 시바꺼 그만큼은 해야 이 정도가 나오는데. 그렇게 말한 성준수가 기상호 머리를 거칠게 쓸고는 바깥으로 나갔다. 박병찬은 그런 지상고를 바라보고 있었다. 상호가 많이 컸네.

 

바깥의 개수대에서 어푸어푸 세수하고 있던 기상호의 뒤로 웬 인영이 다가왔다. 왁! 기상호의 등 뒤에서 놀래키는 인영. 기상호가 놀라서 팔짝 뛰었다.

 

“흐어어아악. 뭐, 뭐고!”

“아기상호. 다 컸네?”

“아, 병, 병찬햄?”

“코너가 아니어도 슛 잘만 쏘고 말이야~ 슛 없다고 울던 기상호는 어디 갔어.”

“울긴... 제가 언제 울었다고요 햄.”

“아닌데? 울었는데?”

“아.. 아니에요. 저 이젠 어리광 안 부리거든요.”

 

기상호가 멋쩍게 웃으며 수건을 챙겨 먼저 체육관으로 향했다. 어? 어어... 먼저 앞서가던 기상호가 다시 뒤돌아서 박병찬을 불렀다.

 

“햄 안 와요? 저 먼저 가요?”

“어어.. 아냐 같이 가.”

 

어리광... 그때 말을 담아두고 있었던 건가...? 지금 이게 나 맥이는 건가...? 찝찝한 마음을 털어내고 기상호를 따라 체육관으로 향했다. 다시 뜨거운 훈련의 시작이었다.

 

고된 훈련이 다 끝나고 진이 다 빠진 박병찬은 농구대에 등을 기대 다른 애들이 노는 걸 구경했다. 역시 젊음이 좋다, 이렇게 훈련하고 쟤넨 저렇게 또 놀 기운이 있네... 애늙은이 같은 생각을 하며 애들이 하는 양을 구경하다 보면 박병찬은 깨닫는 게 하나 있었다. 어리광, 안 부린다며? 시골 똥강아지 마냥 모든 지상고 부원의 손을 타며 어리광을 부리고 울상을 짓는 기상호는 박병찬에게 있어서 새로운 모습이었다. 날 선 모습도 봤지만, 그 이상으로 눈을 반짝이고 응원하는 모습을 더 많이 봤다. 상호가 평소에는 저런 모습이구나? 풀어져서... 박병찬 안에서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한 짜증이 일었다. 박병찬이 벌떡 일어나 장난치고 있는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다가오는 병찬에 아이들의 시선이 몰렸다. 아직 박병찬을 보지 못한 기상호의 어깨에 박병찬이 팔을 둘렀다.

 

“우리 이제 저녁 먹으러 갈까?”

 

박병찬이 그렇게 기상호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로 식당으로 향했다. 기상호가 살짝 굳은 것이 느껴져 박병찬의 기분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모두가 함께 있을 때는 잘도 조잘대던 기상호의 입이 조용해진 것 같다고 느끼며 걷다 보면 식당이었다. 아니 나를 그런 눈으로 보면서 이런 건 싫어? 기상호의 앞자리에 앉아 뚱하니 밥을 먹고 다같이 숙소로 향했다.

 

타학교와의 원활하고 친밀한 교류를 위해서 지상고도 조형고와 함께 숙소를 잡았다. 교류를 위해서라며 방 배정도 모두 섞어서 했다. 박병찬은 정희찬과 같은 방이었는데, 늦은 시간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아 정희찬을 찾아 나섰다. 방 복도를 지나며 시끄러운 방의 문에 노크하려고 했더니 문이 열려있었다.

 

“... 니 그래서 요즘 그래 넋이 나가 있었나?”

“맞다...”

“그럼 그 누님이 니 첫사랑 아이가?”

“뭐... 그런 거 같은디.”

“야, 그럼 뱅차이햄한테 물어보는 어때.”

“니가 말한 그 노란색에 검은색 포인트 들어간 유니폼은 부연중 밖에 없다 아이가. 아... 근데 그짝에 여자 농구부가 있었나.”

 

끼어들 타이밍을 놓쳐서 계속 엿듣던 박병찬이 웃으며 결국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얘들아 뭐 해?”

“아 뱅차이햄! 뭐, 별 건 아니고 그냥 수다요, 수다.”

“우리 중학교엔 여자 농구부 없었는데?”

“아 햄! 그걸 다 들으면 우짭니꺼!”

 

기상호가 바짝 얼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박병찬과 눈도 못 마주치는 게 정말 부끄러워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귀가 새빨개진 게 한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뭔데? 아기상호 첫사랑?”

“아니, 햄 아기상호는 뭔데예?”

“너네가 아기상호라고 부르더라고 상호. 귀여워서 나도 알게 된 이후로 그렇게 부르는 중.”

“뭐고! 쌍호 니 참말로 아기 돼뿟나! 아, 맞아요 상호 첫사랑 얘기 중이었어요. 요즘 따라 그래 집중 몬한다 싶더니, 꿈에 계속해서 나온다카대요.”

“오, 첫사랑이 꿈에 나와?”

“아!! 희차이 그만 해라!”

 

본격적으로 기상호의 첫사랑 얘기를 시작하려는 낌새가 보이자 기상호가 정희찬에게 달려들어 입을 막았다. 으븝, 으으븝. 필사적으로 이야기를 막는 기상호를 보니, 괜히 장난을 치고 싶고 무슨 내용이길래 이렇게까지 나한테 비밀로 하려고 하나 서운해진 박병찬이 기상호에게 달려들었다.

 

“뭔데? 나도 알려줘.”

 

그렇게 평균 185.6의 거대한 농구선수 세 명이 바닥을 한참 굴렀다. 승자는 당연하게도 21살 박병찬이었다. 멸치인 정희찬과 몸은 거대하지만 아직은 16살인 기상호가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기상호를 바닥에 깔아뭉개고 그 위에 앉은 박병찬이 다시 물었다.

 

“그래서 무슨 얘긴데? 형아도 알려주라~”

 

박병찬이 기상호 위에서 기상호는 보지도 못할 앙탈을 부렸다. 기상호가 깊은 한숨을 쉬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린 시절에 자신이 딱 한 번 만난 상대가 있는데, 그 사람이 농구를 가르쳐 준 적이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초등학생일 때의 이야기라 상대의 얼굴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요즘 따라 그 상대가 계속해서 꿈에 등장한다는 이야기였다. 기상호의 이야기를 듣는 박병찬의 얼굴이 평이했다. 기상호가 몸을 비틀어 겨우 고개를 들어 박병찬을 쳐다보았다. 전등의 빛으로 역광이 진 박병찬의 표정은 기상호에게 보이지 않았다.

 

“근데, 정말 얼굴이 기억이 안 나요.”

“상호. 니 지금 만으로 열여섯인데 초딩 때가 기억 안 나면 큰일 아이가?”

“아이, 희차이 장난치지 마래이!”

 

마침, 기상호의 룸메이트인 이초원이 들어왔다.

 

“상호 룸메가 초원이였구나~”

“형은 왜 여기 있어요?”

“맞다. 나 사실 곧 소등시간인데 희찬이가 안 들어오길래 찾으러 온 거였는데.”

“헉, 맞다. 소등시간. 얼른 돌아가죠, 햄.”

“그래, 가자. 상호도 초원이도 잘 자~”

 

기상호가 문 앞까지 나와 두 사람을 배웅했다. 박병찬이 잠깐 돌아본 기상호의 얼굴에는 피곤하다고 써서 붙여져 있었다. 기가 쪽쪽 빨린 얼굴이었다. 상호 말린 오이 같당 박병찬이 기상호가 들으면 기겁할 생각을 하며 방으로 향했다.

 

 

.

 

 

 

박병찬의 경우

 

 

박병찬이 웃으며 방을 나오기는 했지만, 박병찬은 박병찬 나름대로 심각했다. 상호의 초등학생 시절, 노란색에 검은색 포인트의 유니폼, 그리고 농구를 가르쳐줬다는 그 사람. 박병찬의 기억에 딱 한 명, 기상호의 기억과 일치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렇다. 박병찬이었다.

 

얼굴까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중학생 시절에 박병찬은 어느 초등학생에게 농구를 가르쳐 준 적이 있었다. 그게 기상호였나? 인천에서 만났는데 사투리를 세게 쓰길래 인상이 깊었던 기억이 있었다. 이걸... 아는 척을 해야 하나? 말해봐야 뻘줌하고... 그냥 상호의 얼굴 없는 첫사랑의 존재를 지켜주자.

 

‘그럼, 내가 상호 첫사랑이라니... 아이고... 상호야...’

 

이건 끝까지 비밀로 해줘야겠다. 초등학생의 순정은 지켜줘야지. 기상호가 속도 모르고 근질거리는 입을 꾹 다물고 어른이 되길 택한 박병찬이었다.

 

 

.

 

 

 

기상호의 경우

 

 

정희찬과의 대화를 들은 것이 하필 또 박병찬이라는 사실에 기상호는 절규하고 있었다. 기상호는 박병찬에게는 절대. 절대로 어리광 부리지 않겠다고 다짐한 바가 있었다. 조형고에서의 합숙 훈련 중에게 박병찬에게 어리광 부리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었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로 박병찬에게 사르르 녹아서 햄햄 거리며 웃고 다녔지만, 어디 가서 어른스럽고 조숙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은 기상호에겐 충격이었다. -물론 기상호가 낯을 가리는 성격인 탓에 어른들 눈에는 다 조숙한 아이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기상호에게 어리광 부리지 말라는 이야기는 기상호의 자존심에 크게 스크래치를 냈다. 그래서 곧 죽어도 박병찬 앞에서는 어른스럽게 굴자고 결심했던 것이다. 그 결과 박병찬한테는 조금 무뚝뚝하게 군 것 같아 걱정은 되었지만, 박병찬이 그런 사소한 것까지 신경쓰는 소인배는 아니었으므로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정희찬과의 대화에서 박병찬에게만큼은 절대 알려주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를 들키고 나니, 침대에 누웠다가도 이불을 걷어차고 싶어졌다. 쪽팔려서 꿈에 나올 것만 같았다.

 

결국 꿈을 꾸기는 했다. 바로 그날의 꿈이었다.

 

“그러게... 음... 중학생이 되면?”

 

이번에도 결국 뒤를 돌았는데, 보이는 건 까만 티셔츠뿐이었다. 여기서 조금만 더 고개를 들어 올렸고, 이번에도 안 보이겠지 싶었던 기상호가 포기하려던 찰나였다. 역광에 살짝은 어둡게 가려진 첫사랑의 얼굴이 보였다. 기상호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꿈을 복기했다. 그러니까 기상호의 기억을 누가 조작한 게 아니라면, 그 얼굴은.

 

박병찬이었다.

 

이마에서 식은 땀이 나는 것 같아, 손으로 슬쩍 이마를 훔쳤다. 황망한 얼굴로 숨을 몰아쉬고 있자, 핸드폰 중이던 이초원이 기상호 쪽을 돌아보며 물었다.

 

“뭐야? 악몽이라도 꿨어? 괜찮아?”

“어어... 예에... 악몽... 악몽인가?.”

 

이초원이 많이 놀랐냐며 다가오려고 하길래 괜찮다고 사양하며 다시 자겠다고 선언한 기상호가 침대에 누웠다. 벽을 보고 누운 기상호의 머릿속이 빙글빙글 꼬였다. 이게... 진짜라니. 그렇게 고민하던 기상호가 눈을 질끈 감고는 결심을 굳혔다.

 

 

 

.

 

 

 

박병찬은 21살 인생을 살면서 매년 고백을 받아왔다. 잘생긴 얼굴에 모나지 않고 서글서글한 성격. 남녀노소 불문하고 박병찬을 좋아했다. 박병찬도 모르지 않았다. 자신이 인기가 많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런 저 자신이 초등학생 기상호의 첫사랑의 상대였다는 것은 그다지 놀라운 것은 아니었다. 다만 상대가 기상호라서 조금 당황스럽긴 했다. 뭐, 하지만 기상호는 어차피 박병찬을 기억 하지 못했고 그날의 기억은 박병찬에게만 있다고 박병찬은 그날 아침까지만 해도 확신하고 있었다. 아직 박병찬이 기상호를 잘 몰랐기에 할 수 있는 단정이었다.

 

“병찬햄, 식사하시고 좀 이따 저랑 얘기 좀...”

 

기상화 진지한 표정으로 다가와서 심각하게 말을 꺼냈다. 뭐가 이렇게 심각하지 상호는... 귀엽네. 박병찬의 대답을 기다리는 기상호의 눈알이 대굴대굴 굴러다녔다.

 

“그래! 좋아. 무슨 얘긴데?”

“그건... 지금은 비밀이요. 좀 이따 말해드릴게요. 그럼, 식사하고 봬요, 햄!”

 

기상호가 제 할 말을 마치고는 후다닥 뛰어서 체육관으로 뛰어 들어가 버렸다. 박병찬은 지금껏 인생에서 저는 감도 나쁘지 않고 눈치도 빠른 편이라고 믿으며 살아왔는데, 이날을 기점으로 그 생각을 철회하게 될 거라고는 이때의 박병찬은 상상도 못 했다.

 

식사가 끝나고 기상호가 박병찬에게 우물쭈물 다가왔다. 웃으면서 반겨주니 기상호가 지금 얘기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말을 꺼내는 것이 부끄러운지 얼굴에 은은하게 홍조가 올라온 기상호였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나 고민하던 박병찬을 세게 관통하는 생각 하나가 있었다. 매년 고백을 받아온 박병찬에게 지금 이 상황은 아주 익숙한 것이었다. 상호가 지금 되게 진지하네, 고백이라도 하나? 가볍게 생각해보려고 했지만 불가능했다. 말 그대로 불가항력. 이 상황은 고백인 것 같다는 거대한 생각에서 박병찬은 벗어날 수가 없었다. 기상호의 손에 이끌려 가던 박병찬은 사색이 되었다. 설마 정말, 고백이라도 하나? 정말 기억이 났나? 이거 어떡하지. 어떡해???

 

우물쭈물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하고 고민하던 기상호를 보자, 갑자기 박병찬도 심장이 뛰었다. 이거 진짜 고백 아냐? 난 지금 연애할 생각 없다고 미리 말해줘야 하나? 아, 이거 어떡하지. 어제 물어보지 말걸. 호기심이 뭐라고 그걸 못 참아서 이 상황을 만들어 박병찬!!! 속으로 온갖 생각을 하다가, 결국 먼저 선수 치는 게 맞다고 결정한 박병찬이 입을 열었다.

 

박병찬이 기상호와 동시에 말을 꺼내야겠다고 결심했다거나 그런 것은 절대 아니었다.

 

“미안, 상호야 나는 요즘 연애 생각이 없어.”

“어제 그 첫사랑 말이에요.”

 

말이 겹치고 두 사람이 헙, 입을 닫았다.

 

“예? 연애요...? 어... 네. 그러시구나...? 햄 먼저 말씀하세요.”

“어?”

 

바로 이 대목이었다. 박병찬이 자신이 뭔가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한국인의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상기한 박병찬이었다. 지금 한순간의 충동에 못 이겨서 5살 어린 애한테 이런 말을 했다니. 선선한 가을바람이 부는 가운데 박병찬 혼자 더위에 말라가고 있었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최대한 억누르고 기상호 앞에서 어른인 척 허세를 부렸다. 있는 힘껏 가오와 허세를 부리지 않으면 이 상황에서 뛰쳐나가 버릴 것만 같았다.

 

“아... 아니야. 내가 말이 헛나왔네. 그래서 첫사랑이라고 했나? 응... 첫사랑이 왜?”

“별건 아니고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거 병찬햄 같아서요.”

“...”

 

기상호가 꺼낸 얘기는 결국 첫사랑에 관련한 이야기가 맞기는 했다. 첫사랑이 나여서 고마워? 나인걸 기억해줘서 고마워? 아니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박병찬이 점점 고장나고 있었다. 뜨겁게 열이 오른 박병찬의 뒷목이 새빨게졌다는 사실은 기상호도 박병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박병찬이 필터링없이 입 밖으로 나오려는 말들을 힘겹게 삼키고 말을 골랐다.

 

“응... 나도 어제 방에 가서 생각해봤는데, 맞는 것 같더라고. 아마 우리 집에 사진 있을거야...”

“아, 역시? 햄 맞죠? 머리카락이 길어서 당연히 여자라고 생각했었나 봐요. 오늘 꿈에서 확실히 얼굴이 나왔는데, 너무 햄이라서 물어봐야겠다 싶었어요.”

 

기상호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박병찬에게 다가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뭔가... 저도 다 기억이 났는데, 햄은 정말 다 알고 있겠구나 싶더라고요. 제 첫사랑이 햄인거. 아, 근데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마세요. 초등학생이었잖아요.”

“아... 그렇게 말해주면 나야 고맙지.”

“네. 별거 아니죠? 어우, 가을바람이 선선하이 좋은데 잘못하면 감기 걸리겠다. 얼른 들어가죠, 햄.”

 

박병찬이 오는 낌새가 안 들어 기상호가 고갤 돌려 다시 박병찬을 확인했다.

 

“햄?”

“먼저 가, 상호야. 나는 좀만 더 바람 쐬고 갈게.”

“햄, 그러다가 감기 걸려요. 적당히 들어오세요!”

 

기상호가 자리를 떠나고, 박병찬 혼자 으슥한 교정에 남아서 서 있었다. 너무 더웠다. 멀리서 보면 제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연신 부채질을 해도, 식을 줄 모르는 열기에 마른 세수를 하다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지구에서 사라지고 싶다...

 

‘상호는 내가 첫사랑인 걸 알아도 상관없구나. 부끄럽다...’

 

부끄러움 때문인지, 놀람 때문인지, 이유를 모를 두근거림은 한참 박병찬의 안에서 세게 박동했다.

 

 

.

 

 

 

체육관에 가까워지고, 기상호는 문득 제 얼굴이 너무 빨갛지는 않은지 급하게 휴대폰을 꺼내 카메라를 켰다. 카메라에 비친 제 얼굴은 홍시 그 자체였다. 큰 손으로 얼굴을 쓱쓱 비비면서 홍조가 사라지길 기다렸다. 아까도 이렇게까지 티나지는 않았겠지? 방금 있었던 상황을 떠올리고 다시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나저나 병찬햄... 연애 생각 없구나...’

 

기분이 축 처졌다. 다른 마음이 없었냐고 하면 아니었다. 그날 어쩌다가 자신에게 농구를 가르쳐주게 되었는지 다른 것은 더 하지 않았는지 옛날이야기를 좀 하면서 그건 어렸을 때의 일이니 신경쓰지 말라고 해명도 좀 하고 싶었다. 물론 이번 일을 계기로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으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다 망했다. 기상호는 좀 더 저가 말을 잘 꺼내어 설명했어야 했다고 자책했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의 전략이 처참하게 망해버린, 후회의 밤이었다.

 

 

.

 

 

 

서로의 어색함을 애써 감추고 웃어넘기던 합숙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모두가 숙소에서 짐을 빼기 위해 정리하느라 분주했다. 기상호가 시간이 흘러 이번 합숙을 회상하자면, 정말 밥이 코로 넘어가는지 목으로 넘어가는지 모를 합숙이라고 할 것이다. 미묘하게 서로가 서로를 의식하느라 미묘하게 신경을 갉아먹었다.

 

기상호의 심란함은 말로 이루어 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상호는 파워 내향인이었다. 낯도 잘 가렸고, 먼저 다가가는 것을 힘들어하는 성격이었는데 박병찬과 친해지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했다. 친한 사람이 아니면 하지 못했을 표정과 반응들을 박병찬 앞에서 자연스럽게 해보겠다고 언제는 씻으며 거울 앞에서 웃어도 봤다. 이젠 전처럼 연락해도 서로가 불편해할 것이 선했다. 이렇게 마음을 다 접어야 하는 게 조금은 억울했다.

 

기상호는 박병찬을 좋아했다. 제 첫사랑이 사실은 현재 짝사랑 중인 박병찬과 동일 인물이란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지만, 그 사실마저도 좋았다. 제 사랑에 운명이라고 하는 거대한 존재가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만 같았달까. 물론 기상호가 운명론자인 것은 아니었다. 동성 간의 연애가 환영받는 시대는 아니다 보니, 이러한 우연도 운명이라 믿고 싶어졌다. 내 사랑이 다른 사람들의 사랑만큼 평범한 것이길, 아니 사실 기상호는 제 사랑이 그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길 바랬다. 그것도 연애 생각 없는 박병찬 때문에 와장창 다 깨져버리고 말았지만, 아직 기상호는 그 마음을 다 접을 수 있겠단 확신이 들지 않았다. 한숨이 푹푹 나왔다.

 

박병찬도 별반 다른 상황은 아니었다. 괜히 혼자 설레발쳐서 이런 실수를 한 것이 너무 쪽팔렸다. 부끄러웠고, 도망치고 싶었다. 올해가 혹시 삼재던가? 아니면 내가 사주에 망신살이 꼈나?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아무리 한탄해도 일은 벌어졌다. 박병찬의 목표는 하나였다. 이 엉망이 되어버린 관계를 그나마 회복시키는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헤어지는 것은 박병찬이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

 

 

 

그런데 그게 쉽지 않았다. 기상호가 박병찬을 피하느라고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루토 뺨치는 실력이었다. 어디서 느리다는 소리 들어본 적 없는 박병찬의 자존심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젠 오기가 들었다. 무조건 상호를 잡아주고야 말겠다. 운동선수의 쓸데없는 승부욕 발동이었다. 박병찬은 식사가 끝나고 나가는 기상호를 노리기로 했다. 그래서 식판은 이초원에게 맡기고 기상호가 나가면 무조건 뛰어가기로 결심했다.

 

기상호가 밥을 다 먹고 일어나는 것을 흘끗 곁눈질로 확인한 박병찬이 이초원에게 눈짓을 했다.

 

‘초원아, 부탁한다.’

 

그리고 기상호가 식당 문을 나서는 순간 박병찬도 벌떡 일어나 뛰었다. 뒤에서 들리는 거센 뜀박질 소리에 기상호가 뒤를 슬쩍 뒤를 돌았다. 박병찬이 저를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기상호가 펄쩍 놀라 덩달아 뛰었다. 그렇게 한참을 뛴 두 사람, 승자는 결국 박병찬이었다.

 

“달리기로 형아한테 이기려면 한참 남았다, 그치 상호야?”

“... 저한테 와 이러시는데요 햄...”

“너가 나를 피하잖아. 오늘 합숙 마지막 날인데, 확실히 해둬야지.”

 

일단 밥 먹자마자 뛰었으니 소화제라도 챙겨먹자며 박병찬이 기상호를 데리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기상호가 우물쭈물 도망치려는 낌새가 보이자, 박병찬이 우악스럽게 어깨동무를 한 채로 끌고 갔다.

 

편의점에서 소화제를 두 개 사 들고 나와 그 앞 테이블에 잠시 앉았다.

 

“상호야, 연락할 거지?”

“예에.. 할 거에요.”

“또 볼 거지 우리?”

“그럼요.”

“그래... 근데 나는 왜 상호가 나한테 연락도 안 하고 앞으로 나를 피해 다닐 것만 같지...”

 

정곡을 찔린 듯 기상호가 머쓱하게 웃으며 변명했다.

 

“우리 코트 위에서만 보는 사이가 아니라 코트 밖에서도 보는 사이가 되어야지 않겠어?”

“예에... 그쵸.”

 

자, 악수. 박병찬이 기상호에게 악수를 청했다. 이건 왜... 기상호가 미심쩍게 박병찬을 바라봤다. 앞으로 계속 잘 보자는 의미야 아잇, 알겠어요. 싸운 것도 아닌데 악수는... 마지못해 손을 내밀며 구시렁대는 기상호를 보며 살짝 위기감을 느꼈다. 이런 것도 귀엽다고 느껴도.... 되나?

 

“하여튼. 다음엔 상호가 인천으로 놀러 와. 형아가 인천의 맛을 보여주마. 아, 아직 학생이라 힘드려나? 그럼 내가 부산으로 놀러 갈 테니까 상호가 형아 부산 구경시켜주라. 알겠지”

 

기상호가 끄덕였다. 근데요, 햄... 남사시러워가... 손 좀 놓으면 안 돼요? 하하하 이런 거 부끄러워하는구나? 아니 못 놔줘. 안 돼. 기상호가 또 울상을 지었다. 반대편 손으로 스멀스멀 올라가는 입가를 가리며, 박병찬이 생각했다. 뭔가 잘못된 것 같다고.

 

두 사람의 사랑이 가열 차게 현재진행 중이었다. 이는 기상호의 시간이 빠르게 흘러 어서 성인이 되달라고 빌며 박병찬이 물 떠다 달밤에 기도하게 될 날도 머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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