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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로 안부를 물어요.
@hiDangzi
달나라군
< [ 잘 지내세요? ]
당신에게 묻는다. 서른둘인 해에 오래전에 헤어진 구 애인에게 안부 연락이 온다면 당신은 어떡하겠는가? 박병찬은 마시던 이온음료를 내려놓았다. 알림창을 다시 확인해도 글자는 바뀌지 않았다. 무려 7년 전에 헤어져 소식조차 모르고 살았다. 손가락을 타고 흩어지는 현실감각을 붙잡으며 내려놓은 음료병을 들이켰다. 세상이 3초 뒤에 멸망하려나? 그만큼 현실성이 떨어졌다.
땀이 식어가고 있는데도 심장이 거세게 뛰어 춥지 않고 도리어 더웠다. 라커룸 중앙에 놓인 벤치에 앉아 다시 봐도 새로운 메시지가 오거나 하진 않았다. 마치 잘 살다 생각난 김에 안부가 궁금해진 게 다라는 듯 덤덤한 한 줄. 박병찬은 그게 죽도록 열 받았다. 수건으로 땀을 닦으면서도 한 번. 후배가 찾는다는 말을 건성으로 답하면서도 한 번. 10분간 기다려봐도 변화가 없자 참지 못하고 알림창을 눌렀다.
[ 어. 엄청. ] >
보내놓고 뭔가 부족해서 하나 더 보냈다.
[ 😁 ] >
-
7년이다. 무려 7년. 스물다섯이던 박병찬은 서른둘이 되어 슬슬 은퇴를 고려할 나이가 되었다. 고등 농구판에서 만난 기상호와의 인연이 4년임을 생각하면 연애가 아니라 만남부터 따져도 모르고 산 시간이 더 길어서 다시 만난다면 완전 따판일게 뻔했다. 성격, 습관, 가치관. 생사도 몰랐으니 인상도 달라졌겠지. 장난꾸러기 햄이었던 박병찬은 여전히 유치한 어른이었으나 기상호는 180도 달라졌을 수 있었다. 스물일곱일 기상호를 상상하며 답장을 기다리던 박병찬은 나흘이 되어도 오지 않는 연락에 속이 뒤집어졌다.
집에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면서 휴대전화를 노려봐보던 때였다. 오늘이 지나면 인내심이 터져 왜 연락이 없냐 따져 물을 예정이었다. 띠링하고 알람이 울리기 전까지는. 그는 들고 있던 덤벨을 던지듯 놓고 휴대전화를 들었다.
< [ 저는 잘 지내요. 그냥 안부가 궁금해서 연락해봤어요. ]
둘은 그저 안부가 궁금하단 이유로 무작정 연락할 사이가 아니었다. 농구를 그만뒀음에도 미련 남았던 기상호는 여전히 농구에게 사랑받는 박병찬. 둘은 아슬아슬한 관계를 이어가다 7년 전 해가 덜 뜬 새벽. 기상호가 같이 자던 침대에서 먼저 깨서 부스스 앉았다. 옆에서 자던 박병찬은 평소와 다르게 골이 서늘해서 눈을 번쩍 뜨였고, 듬성듬성 내려앉은 빛을 피해 앉은 기상호와 눈이 마주쳤다. 그림자 져서 표정은 볼 수 없었지만, 시선이 마주쳤음은 확실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기상호는 덤덤하게 인제 그만 만나자며 이별을 선고했다. 아, 박병찬은 이미 수십 개의 예고편을 보았다. 농구장을 펄펄 날아다니는 애인 보기를 죽도록 힘들단 눈으로 그를 보았기에. 미련은 때때로 누군가를 향한 미움이 되기도 한단 사실을 제일 잘 알았기에 붙잡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게 그의 사랑 표현법이었다.
서글픈 이별임에도 기상호를 차단하지 못했다. 결국, 오늘까지도 박병찬의 즐겨찾기 목록에는 기상호가 유일했다. 프로필의 온점 하나라도 바뀌면 곧장 알아볼 수 있어서 해제하지 않았다. 연애할 때는 사랑의 증표였고, 이제는 미련의 정도가 되었다. 처음에는 죽도록 힘들었다. 차츰 시간이 흐르고서는 아주 가끔 떠올랐다. 끝까지 잡지 못한 손이 그리워서, 가끔 짓던 헛헛한 얼굴이 보고 싶어서. 적어도 농구는 하고 살지. 소식이나마 듣게 해주지. 기상호는 오래되어 꺼내보지 않는 앨범이 되어 그의 안에 남았다. 이사 갈 적에나 겨우 발견하는 먼지 쌓인 과거. 좋았던 순간을 모조리 담아 넣었음에도 잊어버린 순간.
7년이 지나 연락할 때는 언제고 마치 얼마 되지 않은 양 구는 꼴은 제아무리 긍정적인 박병찬이라 할지언정 좋은 말이 나오지 않았다. 머리를 헤집으며 분노를 참아냈다. 손가락은 이미 재빠르게 타자를 치고 있었다.
[ 상호야 우리가 좋게 헤어진 건 아니잖아? 근데 이렇게 연락해놓고 안읽씹이라니 ㅎㅎ 형아가 어떻게 생각해ㅇ| ]
마지막 커서가 깜빡이는 때였다. 아직 보내지 못한 메신저 위로 기상호가 하나 더 보냈다.
< [ 솔직히 보고 싶기도 하고 ㅎㅎ ]
고작 한 문장으로 7년간의 서러움이 씻겨 내려갔다. 박병찬은 주체 못하고 실실 웃었다. 시간이 흘러도 기상호는 기상호구나. 마지막으로 봤던 스무 살의 기상호가 그림처럼 그려졌다. 입꼬리 찢어지게 웃어 생긴 주름과 정체 모를 오타쿠 농담에 혼자 좋아하던 미소. 길게 뻗은 손가락이 이내 제 뺨을 만지며 '햄 너무 좋아해요.'하며 귓가에 속삭이던 밀어. 오래된 앨범에서 꺼낸 추억은 달콤했다. 마치 7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착각도 들었다. 박병찬은 재빨리 쓰던 문자를 지우고 새롭게 쓴 내용을 보냈다.
[ 그럼 만날래? ] >
바로 답장했지만, 숫자 1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게 뭐람. 얼굴을 콱 구긴 박병찬은 시름시름 앓으며 주저앉았다. 바보 같아.... 과한 설레발이었다면 누가 방법이라도 알려주면 좋겠다. 잘생겨서 좋다는 얼굴은 여전하니 이제 저를 보아도 서글픈 표정을 짓지 않는다면, 손을 잡고 입을 맞추던 때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하지만 읽음 표시는 사라지지 않았다. 운동기구에 등을 기대앉은 박병찬은 쏟아지는 속상함을 거두고 덤벨을 다시 들었다.
-
열심히 갈무리한 노력이 무색하게 그에게는 남은 인내심이 없었다. 구내식당에서 평화롭게 점심 식사 중이던 성준수 앞에 식판을 탕 소리나게 내려놓은 박병찬이 바람처럼 사라진 구 애인의 안부를 물었다. 밥만 잘 먹던 성준수는 당황해서 구겨진 얼굴을 숨기지도 않고 마치 저가 들은 말이 맞는지 확인하는 듯한 어투로 되물었다.
"기상호요?"
같은 대학 리그 출신인 성준수는 기상호와 같은 고등학교 출신인 덕인지 꽤 오래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했다. 연애 소식에 미간을 찌푸리며 걔랑 왜냐는 의문을 표했다가 평소 박병찬의 텐션을 견딜 상대가 걔 외에 또 있겠느냐 말하고는 둘이 잘 만났다며 도닥였다. 헤어지고는 금기어가 되어 입에 올리지 않았지만, 박병찬으로서는 사나흘의 간격을 주며 연락하는 기상호에게 진절머리났다. 전화해도 번호를 바꿔 다른 사람이 받고, 카카오톡 외의 SNS는 닿지 않았다. 이제 사람을 통해 안부를 물을 때였다.
"어. 얼마 전에 연락 왔거든? 나한테 잘 지내냐는 거야. 허 참 네!"
부러 새침하고 얄미운 척 가볍게 말해봤자 실상은 20대 중반 때 헤어진 구 남친 소식 좀 알려달라 조잘대는 꼬락서니에서 벗어나진 못했다. 팀 내 연장자 라인에 속하는 서른둘. 이제는 일말의 부끄러움을 알아 홧홧 달아올랐다. 숨고 싶어도 소식을 알아야 했다. 뭐하고 살길래 농구계의 잘나가는 미남의 구질구질한 구애를 무시하는지 꼭 알고 싶었다. 설마 결혼했나? 상상은 꼬리의 꼬리를 꽉 깨물고 놔주질 않았다. 메리지 블루 뭐 그런 거 걸린 기상호가 결혼을 앞두고 구 애인의 텍스트라도 보고 싶었다던가, 어마어마한 부채가 있다던가. 인터넷에서만 보던 치정 따위가 머릿속을 채웠다.
성준수는 수치에 찬 얼굴을 빤히 보다가 수저를 내려놓았다. 스테인리스 컵에 따라놓은 물을 단박에 마시고 한숨과 함께 마른 세수를 했다. 덩달아 긴장한 박병찬이 앉지도 못하고 불안한 얼굴로 혹시 기상호에게 큰 빚이 있느냐 물었다. 차마 목구멍 너머로 내뱉지 못한 문장이나 머금던 성준수가 중압감에 패배해서 눈을 꽉 감았다.
"걔... 실종됐잖아요."
당신에게 묻는다. 서른둘인 해에 오래전에 헤어진 구 애인의 실종 소식을 듣게 된다면 당신은 어떡하겠는가? 심지어 며칠 간격으로 메시지까지 받았더라면 더더욱이 어떠하겠는가? 장르가 로맨스 코미디에서 공포로 탈바꿈되었다. 박병찬은 잘못 들은 양 눈쌀을 찌푸리며 되물었으나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황당해져 구 애인이 실종된 사실도 몰랐느냐 따져 물으려던 성준수의 성미를 잘 아는 박병찬이 여태의 일을 토로했다. 자기가 제일로 당황스럽다는 말과 함께 카카오톡 메신저창을 보여줬다. 성준수는 말도 안 되는 작금의 상황을 증거를 보고도 믿지 못했다.
"예약 카톡 아니에요?"
구단의 미남 둘이 심각한 얼굴로 있으니 관심 가진 후배가 고개를 쭉 내밀며 의견을 냈다. 그게 뭔지 모르는 성준수에게 카톡에 예약 기능이 있다며 설명했다. 원하는 날짜 시간에 보낼 수 있단 부연 설명과 함께 대화 내욜을 보더니 한 번에 이상함을 집어낸다.
"대화가 어긋나잖아요. 이거 예약 맞네."
하고 다시 보니 이상했다. 기상호와 연락한단 사실에 까맣게 잊은 아이러니함에 그제야 가죽을 벗었다. 그러게, 진짜 예약인가보다. 박병찬은 긴장한 몸을 축 늘어트렸다. 기상호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걸 예약했을까.
기상호의 실종은 물밑 조용히 일어난 일이라고 한다. 박병찬은 이별 뒤로 소식을 전해 듣지 못했지만, 마지막까지 연락이 닿던 지인들의 이야기를 듣자하니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종종 연락도 하고 술자리도 가졌는데 어디 취업 준비 중이라는 소식을 끝으로 감감무소식이랬다. 학생도 아니고 현실에 막막해지는 20대라 그냥 그렇게 멀어진 줄로만 알았다고. 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제 또래들도 그렇게 연락이 끊기는 일이 잦았으니 이상하진 않았다고 했다. 그러다가 1년인가 2년인지 모를 시간이 흘러 실종 수사로 저들에게 연락이 닿았다.
여기까지 들은 박병찬은 궁금해졌다. 경찰 수사에 왜 저는 걸리지 않았을까? 그는 기상호와 관련된 그 어느 연락도 받지 못했다. 하다못해 경찰이라는 사람의 문자 따위도 없었다. 보통 실종 수사라 하면 빚과 치정부터 뒤지는 게 정석이거늘. 그는 기상호의 실종 소식도 몰랐다.
"형한테 연락 닿기 전에 실종 사건이 종결됐으면요?"
"준수야 실종 사건의 종결은 경찰이 생존을 확인한 경우에 돼. 수사 선상이 나한테까지 오지 않았으니 그만큼 빨리 종결됐다는 건데 그럼 상호가 연락 한 번 했겠지."
성준수는 실종 사건의 종결에는 실종자의 사망도 있다 말하려다 굳이 내뱉지 않았다. 박병찬도 알고 있으면서 의식적으로 언급하지 않았고, 부고도 없었으니 사망이라 보긴 어려웠다. 그러니 기상호는 누군가 실종 신고를 할 만큼 조용히 살았고 전자상의 기록이 남지 않아 수색 과정이 필요했지만, 박병찬의 순서가 되기 전에 생존이 확인되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그러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게 된다. 기상호는 무슨 이유로 며칠 간격을 둔 예약 카톡을 보냈는가? 사람은 그 무엇도 허투루 하지 않는다. 눈꺼풀이 깜빡이는 속도, 손장난을 치는 순간에도 심리나 습관을 알린다. 하나부터 열까지 확성기나 없는데 기상호의 행동에는 통 이유를 붙이기 어려웠다.
구내식당에서부터 개인 연습시간까지 지난밤. 박병찬은 집에 돌아오고도 기상호를 생각하기 바빴다. 하루종일 농구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농구공을 튀기고 있노라면 튕기는 소리와 함께 멀리서 기상호가 '햄!' 하며 달려오는 착각이 들었다.
"상호야, 형 돌아버리게 할 작정이었으면 네가 이겼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향해 농구공을 던지고 받기를 반복해봤자 답이 없다. 학창시절의 기상호는 세월이 지나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단 생각만이 그를 지배했다. 애초에 그들이 알던 기상호라면 이런 수수께끼를 낼 사람이 아니었다. 장난이래 봤자 우스꽝스러운 애니 캐릭터 성대모사나, 어디서 보고 온 밈을 따라하는 게 고작이었다. 죽는 시늉을 해서 사람을 놀라게 하는 간 큰 행위는 하지 않았다.
하루종일 고민하고 앉아있으니 체기가 올라왔다. 더부룩한 속을 붙잡고 소화제를 먹었다. 두통도 있어 진통제도 한 알 먹으니 괜찮아지려나 싶은 그때.
띠링.
알림이 울렸다.
< [ 아직까지 절 좋아하고 있어요? ]
곧장 카카오톡으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번호를 바꿨으니 일반 전화는 못 하고, 얼마 전에 한 전화는 받지 않았으나 예약이든 뭐든 지금 휴대전화를 붙잡고 있으면 받겠지. 박병찬은 이제 참을 만큼 참았다. 전화를 받으면 지금 제정신이냐 따져 물을 작정이었다. 사람이 정도껏 해야지. 먼저 헤어지자 해놓고 끝끝내 미련이 남아 서른 줄이 되어서야 겨우 잊은 사람을 휘젓는가? 억울할 지경이다. 실제로 그는 메신저를 받은 첫날부터 기상호를 생각하느라 연습도 제대로 못 했다. 오늘은 아예 박살 나 코치에게 잔소리도 들었다. 그래도 그는 기상호만 생각했다.
죽진 않았는지. 살아서 내게 저런 이상한 연락을 보내는지. 안달 난 마음이 그를 흔들었다. 종래 두려움에 집어삼켜 질지언정 목소리라도 듣자. 멍청한 취기에 휩쓸려 그랬노라는 고백이라도 듣자. 간절해진 그가 기나긴 연결음을 듣고 있었다. 밝은 노랫가락과 반대로 심장이 쪼그라들고 있었다.
그러나 기상호는 받지 않았다.
그래서 음성 메시지를 남겼다.
"상호야 여전히 보고 싶다."
좋아한단 말은 못하겠다. 그래도 보고는 싶었다.
스물일곱일 기상호를 수백 번 상상하니 이제는 그려질 수준이었다. 회사에 다니려나? 양복 입은 기상호는 생각만 해도 웃겼다. 그의 기억 속 스무 살인 청년은 운동복이 더 어울렸다. 왁스칠한 머리는 귀여울 거 같았지만 그래도 아빠 옷 훔쳐 입은 어린애 같이 느껴졌다. 실상 기상호의 양복 차림은 본 적 없으면서 그랬다. 박병찬이 기억하는 기상호는 생각이 깊되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다. 이별을 고하는 순간까지 그렇게 생각했고.
박병찬은 다시 메신저창을 열었다.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몰라 한참 고민하던 때에 숫자 1이 사라졌다. 드디어 실시간으로 연락할 수 있으려나? 예약 문자라니, 실종이니 도통 알 수 없는 일 투성이었다. 기상호는 미궁 속 사건처럼 실마리 하나 잡지 못한 망령처럼 그의 기억으로만 남을까.
< [ 헉 ㅠㅠ 햄 죄송해요. ]
[ 진짜 상호야? ] >
사람 같은 말투였다. 박병찬은 리그 선발보다 지금 이 순간이 더 떨린다고 자부한다. 그리고 그의 불안에 보답하듯 숫자 1이 사라졌다. 답장이 왔다.
< [ 저 군대 다녀왔는데 언제 저런 걸 예약해놨지 ㅠㅠㅠ 진짜 죄송요ㅠ ]
< [ 입대 전에 취해서 예약해놨나봄... ㅋㅋㅋ ]
"기상호!!"
박병찬은 휴대전화를 집어 던졌다. 재워두었던 공포의 만약이란 가정이 얼마나 수많던가? 실종 수사가 제게 닿기도 전에 이미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거나, 확실한 용의자가 있었다거나....... 밀려드는 안도감에 눈물이 죽죽 흘렀다. 팔꿈치로 눈을 가리고 엉엉 울고 있는데 다시 띠링 알림이 울린다.
< [ 근데 햄 저 아직 좋아하세요? ]
앙큼하게 짜증 나는 연하 같으니라고. 박병찬은 곧장 전화를 걸었다. 기상호는 밖인 듯 소란한 인파 사이에서 겨우겨우 목소리를 냈다.
"안녕하세요...? 건강하시죠? 저 방금 음성 녹음 들어 가지고 좀 당황스럽거든요."
"상호야 너 건강하지?"
"아 그럼요! 죄송해요. 저 몸 건강하게 나왔어요."
"네 소식 전해 들으려다가 실종 됐다길래 내가 얼마나 놀란 줄 알아?"
"가족한테도 말 안 하고 들어온 걸 까먹었어요. 진짜 죄송해요."
기상호는 내내 낑낑댔다. 잘못한 줄은 아나 보지. 아니 애초에 스물일곱 먹고 갓 제대하는 놈이 어디있나? 황당해서 물으니 원래는 이렇게 현역으로 갈 생각이 아니었다나 뭐라나.
"그나저나 햄 울었으요?"
"어디야. 지금 만나."
-
첫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가는 동안은 첫차 특유의 선선한 냄새가 났다. 각자의 지역으로 출퇴근하는 사람과 수마에 기꺼이 몸을 맡긴 사람들 사이에 또렷한 눈으로 창밖을 보던 박병찬은 쏟아지는 햇살에 블라인드를 내렸다. 너무 소란했던 건지 누군가 신경질적인 혀를 찼다. 눈치가 보여 잠깐은 머쓱했으나 얼마 가지 않아 사라졌다. 메신저창 마지막에 적인 첫차 타고 갈 테니 기다려달란 말 때문이었다. 기상호는 다음에 서울에 갈 때 연락드리겠다며 에둘러 거절했으나 턱도 없었다.
[ 상호야 너도 나한테 미련 있는 거 아니야? ] >
순순히 이별을 받아들인 청년은 나이 들고 없다. 최악의 가정까지 생각했던 그는 능글맞게 서로 미련이 있는데 뭘 망설이느냐 밀어붙였다. 예나 지금이나 기상호는 이런 면에서는 그를 이기지 못했다. 박병찬은 구단에 무단결근이라는 미친 짓을 해가면서까지 기상호가 보고 싶었다.
스물일곱 기상호.
속으로 되뇌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꽉 조였다.
-
"햄?"
부산역 역사 안 인파를 헤집자 기상호가 그를 불렀다. 아 맞다. 갓 제대했지. 기상호는 누가 봐도 갓 제대한 머리였다. 부끄러운지 모자를 꾹 눌러썼지만, 옆으로 삐죽 튀어나온 머리카락으로 티가 팍팍 났다. 박병찬은 힘이 빠져 푸스스 웃음보가 터졌다. 부산역에는 각자 제 갈 길로 바쁜 군중이 있고 그들은 커다란 두 남자에게 관심 가지지 않았지만 기상호는 혹여나 누가 볼까 염려하며 좌우를 둘러보며 안절부절 못했다.
"이, 일단 제 차로 가요!"
"너 차도 있어?"
스물일곱은 자차가 있는 나잇대가 아니었다. 박병찬은 연봉 높은 선수니 애진작에 차를 샀다지만, 기상호는 이제 갓 제대하지 않았던가. 모르는 사이 기상호는 예전과 아주 달라지지 않았으나, 달라진 구석이 많았다. 스무 살 때보다 넘치는 생기가 달라진 걸음걸이가 말 습관 그리고 자잘하게 자차 여부까지 그러했다. 기상호는 머리를 긁으려다 모자 쓴 걸 기억해내고 목을 긁었다. 봐라. 저것도 박병찬과 연애할 때는 없던 습관이다.
"그렇게 됐어요. 근처에 유명한 중국집 있어요! 지금 열었나 검색해볼게요."
굳이 차를 끌고 갈 필요가 없다던 기상호가 앞장섰다. 박병찬은 뒤를 졸졸 따라 부산역 근처의 중국집으로 들어갔다. 아침 손님을 받기 위해 열었다지만, 되는 메뉴는 몇 없었다. 짜장면 종류와 짬뽕 그리고 볶음밥 몇 종류가 고작이었다. 손님은 졸린 눈으로 배를 채우는 중장년 무리가 있었다.
"저는 유니 짜장이랑 새우볶음밥이요. 햄은요?"
기름진 냄새가 나는 중식당에 멍하니 앉아있던 박병찬이 막 생각난 듯 물었다.
"다시 만날래?"
"에?"
얼빠진 기상호가 입을 크게 벌렸다. 주문을 받으려고 오던 직원은 흥미로운 장면에 주변 테이블을 뽀득뽀득 닦기 시작하고, 졸린 눈으로 음식물을 집어넣던 중장년 무리는 눈을 맑게 뜨고 조용히 귀를 열었다.
"지금 당장 말해야 할 거 같아서. 사귀자."
"무슨 재결합 하잔 말을 중국집에서 해요...?"
"이상해?"
"완전요."
"너는 헤어지잔 말을 잘 자고 일어난 아침에 했잖아."
"그건 쪼까 어렸을 때고요."
"스무 살이나, 스물일곱 살이나......"
"우리 7년 만에 만났거든요?"
"이젠 내가 늙어서 싫다 이거지?"
엿듣던 중장년 무리가 허망해져서 듣기를 포기하고 먹던 걸 마저 먹은 건 차치하자. 슬쩍 겻눈질하던 기상호가 그건 아니고요하며 말끝을 늘렸다.
"그럼 뭐가 문제야? 못생겨졌나? 아닌데."
"이, 일단 밥부터 먹고 생각해요."
"저희 유니 짜장 두 개, 새우볶음밥 하나 주세요!"
식사를 하고 카페에 들렀다. 새로 나온 음료를 하나씩 손에 들고 기상호의 차에 타고 광안리로 향했다. 중고로 샀다는 SUV는 선수 출신 둘이 있으니 꽉 차 보였다. 가끔 음료를 쪽쪽 빨고 30분 안 되는 시간동안 별다른 말은 않았다. 먼저 근황을 물었고, 그다음에는 지인과 연락 끊은 이유를 물었다. 기상호는 쑥스럽다며 말하기를.
"농구 때문에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미련이 뚝뚝 떨어져가 그랬어요."
"...."
"햄은 모를 걸요? 배가 아프다 못해 질투가 났어요. 지금도 쪼까 그라가 연락을 끊었죠. 유치뽕짝 해도 우짜겠어요. 이게 나인데. 군대 다녀오고 나서는 좀 털어놨어요."
"나는?"
"네?"
밀크티 음료를 쪽 빨던 기상호가 운전하느라 정면을 주시한 채 되물었다. 그러자 박병찬이 조용히 묻는다.
"농구에 미련이 있어서 날 좋아했으면서 헤어지자 했잖아. 농구에는 아직 미련 있는데 나한테는 미련 있냐고. 사귈 만큼."
"아~ 이 햄이 중간을 모르네. 지금 적당히 그 화제만 피하고 있었는데. 점마 또라이 아이가? 갑자기 끼어들어 저라노."
기상호는 군 생활 내내 수도권 사람과 어울려 지내 사투리가 어색하다 했다. 그는 잘 몰랐지만, 이제야 알겠다. 대화하면 할수록 사투리가 진해졌다. 민간 생활에 적응하는 중인 모양이다. 기상호가 사회에 완전히 적응하고 나면 기회가 없다고 느껴졌다. 조급한 줄 알면서도 괜히 불러본다.
"상호야,"
"햄. 우리 7년이나 모르고 살았어요."
"그놈의 숫자 7은 잊으면 안 돼?"
"연애는 쪼까 그렇고."
"짜증난다 너."
"썸이나 탈래요?"
눈치 없는 내비게이션이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말했다. 기상호는 안전벨트를 풀고 내렸고 박병찬은 입만 뻥끗 대다 따라 내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상호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