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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우

탕탕-. 바닥 위로 농구공을 튀기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손을 뻗어 들어 보이는 병찬에게 공을 쥐고 있던 상호가 패스했다. 병찬이 빠르게 달려가 공을 림 안에 집어넣었다. 공을 림 안으로 내리꽂고, 림을 붙잡은 채 바닥을 향해 내려온 병찬을 향해 응원석에서 함성과 함께 응원가가 쏟아졌다. 병찬 역시도 응답하듯 짧게 세리머니를 날렸다.

 

곧 4쿼터 종료, 경기의 종료를 알리는 버저음이 울렸다. 73 : 72. 병찬의 마지막 덩크슛으로 이루어진 짜릿한 역전승에 코트 위뿐만 아니라 벤치에 있던 동료 선수들까지 나와 축하하기 바빴다.

 

수훈 선수 인터뷰가 이어지고 그 자리에 병찬이 섰다. 73점의 점수 중 38점을 올리며 스코어러로 활약을 한 박병찬은 누가 뭐래도 오늘의 수훈 선수였다. 인터뷰를 하는 병찬의 주변으로 같은팀 선수들이 물병을 든 채 기다리고 있었다.

 

 

“경기 중반까지 박빙의 상황이 이어지면서 긴장하셨을 것 같은데, 긴장을 풀기 위해 하프타임이나 작전 타임에 선수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셨는지….”

“아무래도 초반에는 게임 흐름이나 이런 것들이 좀 말리고…. 그러면서 계속 박빙의 상황이 이어지면서 경기가 잘 안 풀렸는데 감독님이나 코치님이 많이 북돋아 주셨어요.”

 

 

인터뷰를 하던 병찬과 상호의 눈이 마주쳤다. 병찬이 싱긋 입꼬리를 올려 웃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무엇보다 3쿼터에 막내인 상호가 마무리를 잘해줘서, 그리고 4쿼터 패스를 잘해줘서. 덕분에 마지막에 좋은 슛이 나온 것 같아요.”

 

 

바로 앞에서 구단 선배들을 따라 물병을 들고 있던 상호가 병찬의 말에 귓가가 발갛게 달아올랐다. 저런 식으로 공치사를 말하는, 콕 집어 하는 칭찬은 여전히 부끄러웠다. 병찬의 인터뷰를 듣던 선배들이 잘했다며 상호의 등이며 머리를 토닥여주는 손길에 괜히 더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제게 모인 시선에 상호가 머쓱한 얼굴로 귓가를 문질렀다. 어느새 인터뷰가 끝나고 선배들은 물병을 든 채 오늘의 수훈 선수, 병찬에게 달려들었다. 상호도 뒤늦게 선배들을 따라서 뛰어 들어가 물을 부었다. 물을 맞아 정신없던 병찬은 고개를 휘휘 저으며 물을 떨어뜨렸다. 그러다 곧 정신을 차린듯 마지막에 뛰어들어 아직 빠져나가지 못한 상호를 잡아 가볍게 초크를 걸었다.

 

 

“악, 햄! 잠만, 잠만!”

 

 

마주 닿은 병찬의 몸은 물기에 젖어 축축했다. 축축함 뒤로 느껴지는 뜨거운 체온에 상호의 귓가가 다시 붉어지려는 찰나 상호의 머리 위로도 물이 쏟아졌다. 놀란 상호가 주변을 둘러보자 어느새 병찬의 손에 물병이 들려있었다. 범인이야 뻔했다. 같은 구단의 선배들이었다. 선배들도 물병을 든 채 상호에게 물을 쏟아부었다.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는 것은 병찬의 역할이었다. 수훈 선수가 받는 물세례를 상호에게도 하는 것은 오늘 고생했다는, 박병찬 못지않은 활약을 했다는 무언의 칭찬에 가까웠다.

 

씻고 라커룸으로 돌아온 상호가 옷을 갈아입었다. 그사이 옷을 다 갈아입은 병찬이 상호의 옆에 서 있었다. 물이 반쯤 떨어지는 머리가 보였다. 상호가 수건을 들어 병찬의 머리 위로 올렸다. 그러다 감기 걸려요. 귀찮은데. 상호가 해주면 안 돼? 한층 가까워진 병찬의 얼굴에 상호의 목덜미가 달아올랐다. 응? 되묻는 얼굴을 잠시 바라보던 상호가 눈을 질끈 감았다. 얼굴 공격은 너무한 거 아이에요? 곧 손이 병찬의 머리로 올라갔다. 다시 눈을 뜨면 병찬과 시선이 맞닿고, 곧이어 입술이 가까이 다가온다고 느낀 순간, 라커룸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놀란 상호가 병찬을 뒤로 밀쳤다. 문이 완전히 열리고 구단 선배가 라커룸 안으로 들어섰다.

 

 

“뭐야. 왜 이렇게 놀라?”

“오, 연애 좋죠. 상호야, 연애할래?”

“으, 진짜. 됐고 너희 안 나와?”

“머리만 말리고 가려고요.”

“아, 머리. 머리 길면 안 불편하냐? 나도 좀 길어볼까….”

 

 

팀 선배와 병찬이 얘기하는 소리를 배경음 삼아 상호가 아무 일 없던 척 입던 옷의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형도 머리 길면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입에 발린 소리 하기는. 너 정도 얼굴 아니면 그게 어울리겠냐? 그보다 빨리 나와. 팬들이 너 기다린다고 난리다, 난리. 너 언제 나오냐고 아까부터 기다리더라.”

“와~. 진짜요? 빨리 나가야겠네. 일단 저희 먼저 나가요.”

 

 

구단의 프랜차이즈 스타나 다름없는 병찬을 기다리는 팬들의 성화에 찾으러 온 듯했다. 그런 선배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는 병찬이 고개를 틀어 상호를 향해 입을 움직였다. 집. 가서. 봐. 뻐금거리는 입 모양을 읽은 상호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집 가서. 집. 둘은 같은 집에서 살고 있었다. 그러니까 동거 중이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둘은 연애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것도 6년이나. 상호가 스무 살이 되던 해 사귀기 시작해 벌써 6년째 사귀고 있는 둘은, 상호가 같은 구단에 들어온 작년부터는 아예 동거를 시작했다.

 

같은 남자끼리 사귀는 것이다보니 알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병찬과 상호의 가족, 그리고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던 지상고 선배들과 희찬이, 조형고 형들까지. 주변의 친한 사람들 정도만 알고 있었다. 당연히 동거하는 것도 비밀. 상호는 서울에 살고 있는 형의 집에 얹혀사는 것으로 해두었다. 평소에는 신경도 잘 안 쓰는 형을 다 큰 막내를 걱정하기 바쁜 유난스러운 형으로 만든 것 같아 미안했지만,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대의 앞에서는 사소한 일이었다.

 

짐을 챙기고 밖으로 나온 상호를 반기듯 버스 앞에 팬들이 잔뜩 서 있었다. 사인과 사진을 찍어주는 병찬의 뒤를 따라 상호도 사인과 사진을 찍었다. 많지는 않지만 자신의 등번호가 찍힌 레플리카를 든 팬들이 보이자 상호의 입꼬리가 비실 올라갔다. 레플리카를 든 팬들에게는 유독 사인의 정성이 들어갔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구단 버스에 타고, 가져온 차에 들어가고 나서야 병찬과 상호도 구석에 주차된 제네시스에 올라탔다. 운전석에 자리 잡은 병찬과 조수석에 들어서는 상호는 퍽 익숙해보였다. 애초에 같은 집에 살고 있으니 같은 차를 타는 것도 당연한데 이 사실을 숨기느라 이런저런 변명거리를 만들어내던 때가 생각났다.

 

여러 변명거리를 떠올리다 생각한 것은 상호가 얹혀살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는 형네 집 주소와 둘이 사는 집과 같은 동네라는 것. 그리고 상호가 아직 차가 없다는 것. 이 두 가지를 변명 삼아 얻어탄다는 핑계로 매번 병찬의 차를 타고 경기장까지 출퇴근을 반복하고 있었다.

 

상호가 조수석에 앉자 병찬이 팔을 뻗어 상호의 안절벨트를 맸다. 상호, 본인이 하려고 해도 병찬이 자기가 해주겠다며 고집을 부리는 통에 벨트를 매주는 것은 병찬의 몫이었다.

 

 

“아우, 춥다.”

“…많이 추워요?”

“응, 추워서 손 떨어질 것 같아. 상호가 손 잡아주면 괜찮을 것 같은데.”

“…. 운전이나 해요.”

 

 

퉁명스런 말과 다르게 상호가 손을 뻗어 기어 위에 올린 병찬의 손을 잡았다. 출퇴근 간에 이런 짧은 애정행각은 덤이었다.

 

 

 

 

 

상호에게 병찬은 첫사랑이었다. 10년도 전, 16살. 그 어린 나이부터 지금까지 쭉. 그 긴 시간 어떻게 한결같이 좋아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10년쯤 됐으면 질릴 법도 한데. 날이 갈수록 좋아져서 큰일이었다. 어쩐지 병찬과의 헤어짐이 상상이 가지 않았다. 아마 나이가 들어도 이렇게 살 것 같다는 막연한 어떤 예감이 들었다.

 

소파 위에 기대 앉은 상호의 무릎 위로 병찬이 고개를 뉘었다. 리모컨을 움직이는 상호의 손을 집어 들었다. 어느새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가만히 상호의 얼굴을 응시했다. 상호의 손을 만지는 병찬의 손에도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이 반지는 작년에 둘이 5주년을 기념해 맞춘 반지였다.

 

운동선수고, 같은 남자라서. 경기장에서, 밖에서는 함부로 낄 수 없는 반지는 집에 들어서서야 겨우 서로의 손가락에 끼워졌다. 처음에 병찬은 이렇게 둘의 관계를 숨기는 행동들이 꽤 불만스러운 듯했다. 그러나 편견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이게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상호의 대화와 설득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그때 꽤 싸웠지. 병찬을 달래던 때를 떠올린 상호가 코끝을 찡그렸다.

 

밖에서 표현을 못 하는 만큼 그 대신 집 안에서 더 붙어 지내기로 약속한 탓인지 집에만 오면 둘은 한 몸처럼 붙어있었다. 주로 병찬이 상호에게 엉겨 붙는 것에 가까웠다. 상호가 TV를 본다고 소파에 앉으면 병찬도 따라서 소파로 오고, 만화책이라도 읽으려 서재에 틀어박히면 병찬도 그 옆에 바짝 붙어 앉아 책을 읽고는 했다. 물론 상호도 그게 좋으면 좋지, 싫지는 않았다. 병찬이 떨어지려 하면 아쉬운 티를 내고, 병찬이 슬쩍 떨어져 앉으면 상호가 한 발짝 다가가는 식으로 티를 내고는 했다.

 

그렇게 사귄 지 6년이나 되었고 동거한 지는 1년도 넘었지만, 아직도 눈만 맞으면 불이 튀는 게 갓 연애를 시작한 사람들 같았다. 그럼에도 둘이 입을 맞추는 것 외로 그 이상의 스킨십이 없는 것은 아직 한창 시즌이 진행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하게도 욕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꾹꾹 눌러 참고 있었다. 서로를 아끼고 좋아하는 것 이상으로 농구선수인 둘에게는 그만큼 농구가, 구단이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늘 잘 참는 건 또 아니었다.

 

 

“안 되겠다, 이러다 형아 몸에서 사리 나오겠어.”

“잘 참아놓고 와 그런대요.”

“혈중 상호 농도가 부족해.”

“이래 백날천날 붙어 있음서요?”

“그거랑은 좀 다르지.”

 

 

상호의 손바닥을 잡아 그 위로 입술을 비비던 병찬이 상호를 올려다보았다.

 

 

“안돼요.”

“…. 알아.”

 

 

삐진듯 삐죽 튀어나온 병찬의 입술을 상호가 꾹 눌렀다. 입술을 도로 집어넣은 병찬이 상호의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상호야. 우리 시즌 끝나면 여행 갈래?”

“여행이요? …어디로요?”

“어디든. 국내도 좋고, 해외도 좋고. 장소로 휴양지로 할까? 기간은 한 일주일쯤? 뭐, 어딜 가든 호텔에 틀어박혀 있을 것 같기는 한데….”

 

 

병찬의 말뜻을 알아차린 상호의 목덜미가 발갛게 달아올랐다.

 

 

“변태.”

“왜. 상호도 좋으면서.”

 

 

꿍얼거리듯 움직이던 입술이 멈췄다. 목덜미를 문지르던 상호가 작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좋아요. 대신 우승하기. 져놓고 그래 가기는 좀 글찮아요.”

“원래도 우승할 생각이긴 했는데 그렇게 말하니까 더 욕심난다. 이번 리그는 더 이 악물고 해야겠는데.”

“목적이 불순한데요.”

“목표가 뚜렷하고, 좋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샐쭉 노려보는 얼굴에 병찬이 몸을 일으켜 상호의 입 위로 가볍게 입을 맞췄다. 장난스런 웃음에 상호의 얼굴에도 웃음이 피었다.

 

 

 

 

둘의 다짐을 그대로 나타내듯 병찬과 상호가 몸담은 구단은 정규리그 2위로 챔피언결정전까지 올랐다. 오늘 있을 경기만 이기면 4승으로 우승을 앞두고 있어 감독님과 코치진, 선수들 사이에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감독님이 작전과 함께 짧은 격려를 보냈다. 선수들이 서로를 도닥이며 코트 안으로 들어섰다.

 

시간이 흐르고 3쿼터 막바지가 되었는데도 점수가 크게 벌어지지 않는 상황이 반복됐다. 엎치락뒤치락하는 점수와 지쳐가는 얼굴들이 보였다. 3쿼터 종료와 함께 이어진 짧은 쉬는 시간, 하던 대로만 하라는 격려와 부담감을 가지지 말라는 감독님의 말에도 상호의 마음은 좀처럼 편해지지 못했다. 더 정확히는 신경이 쓰였다.

 

블록을 하며 착지할 때 발을 잘못 디뎠는지 무릎이 살짝 시큰거렸다. 그 탓인지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턴오버도 벌써 몇 번 기록했다. 교체를 요청하기에는 약간 거슬리는 정도라 쉬기도 뭐 했다. 그리고 교체를 할 만한 구단의 다른 선배들은 전부 이미 상호보다 심각한 부상을 달고 있었다. 코트를 바라보던 상호가 무릎 위를 살짝 문지르며 주물렀다. 함께 여행을 가자던 병찬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번에 이기기만 하면 시즌 종료다. 조금만 버티자. 속으로 되뇌인 상호가 몸을 일으켰다.

 

버저음과 함께 4쿼터가 시작됐다. 빠르게 움직이는 공에 맞춰 선수들이 움직였다. 공격과 디펜스를 외치는 팬들의 응원이 빠르게 뒤바뀌었다. 점수 역시도 엎치락 뒤치락거리며 빠르게 올라갔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아슬한 점수 차에 코트 위를 뛰는 선수들의 얼굴에 긴장이 서렸다. 공을 병찬에게 전달해야 했다.

 

높게 패스되는 볼을 쥐기 위해 상호와 상대 선수가 같이 높이 뛰어올랐다. 공을 손에 쥐고 내려오는 그 짧은 시간, 상호의 시야에 무언가 걸렸다. 자신의 발밑에 다른 선수의 발이 있었다. 같이 뛰어올라 동선이 겹친 것 같았다. 그대로 밟으면 상호나 상대 선수나 서로 부상은 확정이었다. 그래서 살짝 착지할 발을 틀며, 병찬에게 볼을 넘겼다.

 

병찬의 손에 공이 들어가고 림을 향해 던져넣는 순간, 상호의 발이 코트 위로 떨어졌다. 그리고 공이 들어감과 동시에 무릎 쪽에서 무언가 비틀리는 소리가 났다. 곧이어 고통이 밀려들었다. 경기 종료를 알리는 버저음이 울렸으나 상호는 그대로 무릎을 잡은 채 일어나지 못하고 쓰러졌다. 팀의 우승과 함께 상호의 부상이 찾아왔다. 전방십자인대 파열. 상호에게 내려진 진단이었다.

 

생각보다 심각한 부상에 상호는 수술에 들어갔다. 파열된 연골을 재건하는 수술이라고 했다. 병찬은 괜찮을 거라며 상호를 달랬으나, 그 얼굴이 창백했다. 수술에 들어갈 때까지 의연한 것은 오히려 병찬이 아니라 수술의 당사자인 상호였다. 수술은 다행히도 무사히 마쳤으나, 이제 문제는 재활이었다. 상호는 농구선수였다. 단순히 걸을 수 있게 되는 게 재활의 끝이 아니었다. 전처럼 뛸 수 있어야 했다.

 

 

“보통 예전의 기량을 끌어올리시려면 반년에서 9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립니다. 다행히 수술의 성과가 좋으니 재활만 잘하신다면 다시 운동 시작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길면 9개월.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상호의 얼굴 위로 걱정과 불안의 기색이 스며들었다. 병실로 돌아온 상호를 침대로 부축하던 병찬이 입을 열었다.

 

 

“왜 그런 얼굴이야, 상호야. 괜찮아. 재활할 수 있어. 나도 해냈는데, 네가 못할 리가 없어.”

“…글켔죠?”

 

 

자신을 향한 믿음이 담긴 단호한 말에 상호의 안색이 조금 풀렸다. 걱정말라며 상호를 북돋는 병찬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나 병찬이 음료를 사오겠다며 자리를 비우자 다시 안색이 칙칙하게 물들었다. 단호하고 희망적인 말에도 좀처럼 마음이 편안해지지 못했다. 재활에 성공할 수 있겠지. 괜한 걱정이 밀려들었다. 병찬햄도 힘들었다카든데.

 

언젠가 병찬에게 직접 들었던 재활 생활이 떠올랐다. 몇 번이고 포기하고 싶었다던 그 때. 그걸 버티고 버텨, 지금의 자신이 된 거라던. 상호가 고개를 저었다. 쓸데없는 고민이었다. 그래, 햄 말대로 재활할 수 있다. 해야지. 안 하면 뭐 우얄낀데.

 

 

 

 

 

2주간의 입원 후 상호는 퇴원해 집으로 돌아왔다. 퇴원 후에도 힘든 재활 생활은 계속 이어졌다. 살짝 굽힌 채 굳어버린 무릎은 당기는 것도 관절을 펴는 것도 힘들었다. 분명 수술 전에는 편하게 하는 간단한 일이었는데 지금은 그 간단한 행동조차 하기 힘들었다. 움직일 때마다 땀과 함께 고통이 밀려들었다.

 

그런 상호의 얼굴을 보는 병찬의 안색이 좋을 리가 없었다. 굳어진 채 심각한 표정의 병찬이 보였다. 아무래도 자신의 재활 시기가 떠오른 듯했다. 괜히 보여서 나쁜 기억을 떠올리게 할 필요는 없었다. 상호는 혼자 할 수 있다며 병찬을 방문 밖으로 밀어냈다. 조용해진 방 안에서 상호가 다시 재활 운동을 시작했다. 고작 사람 하나 빈 것뿐인데 이상하게 더 아프고 힘든 것 같았다.

 

그래도 꾸준히 해주는 만큼 상호의 무릎은 좋아졌다. 재활로 땀을 한 바가지 쏟고 나면 전보다 조금 더 움직이는 무릎이 느껴졌다. 그걸 가장 반긴 것은 몸의 주인인 상호보다도 병찬이었다. 대단하다며 호들갑을 떠는 모습에 상호의 입가가 느슨하게 풀어졌다. 어째 내보다 햄이 더 좋아하네.

 

처음 괴로워 보였던 병찬은 어느 순간부터 할 수 있는 한 상호의 옆에 붙어있었다. 이렇게라도 힘이 되어주고 싶다며 재활에 힘쓰는 상호의 옆에서 구단의 이야기를 전하기도 하고, 훈련에 대한 것들을 말해주기도 했다. 가끔 일상적인 얘기를 할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농구에 대한 이야기였다. 애초에 병찬에게서 농구를 뗄 수가 없었다. 덕분에 간단한 일상 얘기에도 농구가 담겨있었다. 그걸 듣는 상호는 새삼 병찬의 삶이 농구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긴, 병찬 햄이랑 만난 것도 농구장에서였지. 병찬이 속해있던 조형고와의 시합이나 합숙에 대한 것을 떠올리던 상호가 문득 든 생각에 관절을 풀던 움직임을 멈췄다. 만약 내가 농구를 안 했다면 병찬햄이랑 만날 수나 있었을까? 만나더라도 이렇게 연애를 할 수 있었을까. 거기까지 떠오른 상호가 작게 헛웃음을 흘렸다. 아마 못 만났겠지. 그랬다면 병찬은 상호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었을 것이 분명했다. 둘이 만나 이렇게 연애하고 동거까지 할 수 있게 된 건 기상호가 농구를 했기 때문에, 대회에서 직접 맞붙었기 때문에 만날 수 있던 인연이었다.

 

만약 이러다 내가 재활에 실패하기라도 한다면, 그래서 농구를 그만둔다면…. 설마 헤어지나? 순간 든 생각에 등이 싸하게 식는 것 들었다. 설마 싶다가도 병찬과의 대부분의 추억이 농구와 관련되어있다는 걸 깨달았다. 둘의 첫 만남부터 데이트, 나누던 얘기까지 농구가 아닌 게 없었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내가 농구 안 한다고 헤어지자고 할 리가.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재활을 하는 상호의 움직임에 조급함이 깃들었다.

 

조급함이 늘어가는 것과는 다르게 상호의 재활은 더뎠다. 퇴원하고 한 달이면 조깅은 할 수 있을 거라는 것과 다르게 한 달하고도 반이 지나서야 가볍게 뛸 수 있었다. 재활을 게을리 한 적도 없는데 느린 성과에 상호의 얼굴에는 한숨이 늘어갔다. 점점 자신이 다시 뛸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줄어들었다.

 

조금 느린 편이긴 하다는 말에 상호의 안색은 더 나빠졌다. 핸드폰 검색창에는 재활 시기에 대한 검색어가 잔뜩 늘어났다. 그런 상호의 안색을 본 병찬은 전보다 더 활달하게 굴어댔다. 점점 말이 없어지는 상호 대신 병찬의 말이 늘어났다. 그날도 재활을 하느라 조용한 상호 옆에서 병찬이 입을 열었다.

 

 

“다들 너 언제 오냐고 성화더라. 자꾸 안 찾아오면 형들이 다음에 집에 쳐들어 오겠다더라. 안들키려면 한 번 찾아가야겠던걸? 아, 그리고 얼마 전에 훈련하다가….”

“…햄.”

 

 

무겁게 열린 입에 병찬의 말소리가 멈췄다.

 

 

“…왜, 상호야?”

“…저 농구 그만할까요? 재활도 잘 안되고….”

“…상호야, 왜 그런 말을 해. 너 다시 농구 해야지. 형이랑 같이 다시 안 뛸거야?”

“알죠, 아는데. 재활하더라도 다시 예전처럼 못 뛸 수도 있는데…. 안 그래도 그렇게 대단한 선수도 아니었는데 부상까지 달아뿌면….”

 

 

병찬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소리를 들은 상호가 몸을 움찔 떨었다. 상호가 고개를 푹 숙이고, 손가락에 시선을 고정했다.

 

 

“…일단 좀 더 생각해보자. 너 지금 재활 때문에 힘들어서 그런거야. 좀 더 고민해보자, 상호야.”

“…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형 이거 정리하고 올게. 푹 쉬어.”

 

 

상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호는 병찬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실망한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을 병찬을 생각만 해도 무서웠다. 방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완전히 닫히고 나서야 고개를 든 상호가 병찬이 나간 문을 바라보았다.

 

다시 농구를 하라던, 단호하던 병찬의 말이 귀를 울렸다. 병찬은 농구를 하지 않는 자신은 싫은 걸까. 문득 든 생각에 상호의 움직임이 멈췄다. 상호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이다, 거기서 그만두라 하는 놈이 빙시지. 손으로 무릎을 문질렀다. 그래, 다시 농구해야지. 햄이랑 같이 코트 뛸라믄.

 

그렇게 다짐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병찬햄은 내가 농구를 하는 걸 더 좋아하는구나. 내가 계속 농구를 하기를 바라는구나. 혹시나 정말로 농구를 하지 않는 자신을 싫어하게 된다면. 재활을 그만둔 자신에게 헤어지자는 소리를 내뱉는 병찬이 그려졌다.

 

한 번 든 나쁜 생각은 자꾸만 커져갔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할수록 점점 집중하기가 힘들어졌다. 조급함과 불안한 마음과는 반대로 재활은 점점 더 더뎌졌다. 처음 재활을 시작하고서 벌써 반년이 지났다. 시즌이 곧 다가오는데 상호의 다리는 아직도 다치기 전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초조함이 늘어가고, 밤을 뜬 눈으로 새는 시간이 늘어갔다.

 

 

 

 

 

“상호야, 구단 찾아가볼래?”

“…네?”

“계속 집이랑 병원만 반복했잖아. 바람 쐴 겸 구단도 가보고, 형들도 보고 그러면….”

 

 

구단에 갈 시간이 있다면 재활에 더 힘쓰는 게 나았다. 안 그래도 느린데. 그리고 아직도 제대로 회복 못한 자신을 보면 구단에서 2군으로 방출을 논의할지도 몰랐다. 재활도 느린 선수가 2군으로 방출되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 게다가 자신은 병찬 같은 구단의 프랜차이즈 스타도, 꼭 필요한 선수도 아니었다.

 

 

“아…. 아이에요. 개않아요.”

“그래도…. 요새 너무 힘들….”

“괜찮다니까요!”

 

 

큰 소리에 상호가 입을 막았다.

 

 

“…. 미안해요.”

“…. 아냐, 내가 미안하지. …형이 너 좋아하는 음료 사 올게. 요 앞 카페에 파는 거. 그거 좋아하지? 먹고 기분 전환이라도 하자.”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병찬이 말을 돌렸다. 병찬의 노력으로 상호가 냈던 신경질은 다행스럽게도 둘 사이에서 없던 일인 것처럼 잊혔다. 그것과는 별개로 상호의 심정은 편하지 못했다. 그날 이후로도 종종 부딪히는 일이 늘었던 탓이었다. 아픈 자신을 배려해서 병찬은 자꾸만 자신에게 숙여줬다. 상호 역시도 날카롭게 굴어놓고 속이 편하지 않았다. 대화가 점점 줄어들었다. 줄어든 대화만큼 내가 나 자신이 아니게 되는 것 같았다.

 

여느 날처럼 그날 밤도 뜬 눈으로 잠들지 못한 상호가 가만히 누워 옆을 바라보았다. 잠든 병찬의 얼굴이 보였다. 요새 들어 자꾸 신경질을 내는 자신이 떠올랐다. 모른 척 참아주는 병찬도. 전부 자신을 생각해서 해줬던 말이었을 텐데.

 

왜 이렇게 됐을까. 이것저것 생각하던 상호의 머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헤어지기 싫어서. 내가 재활을 그만두면, 농구를 포기해버리면 병찬이 자신과 헤어지자고 할까 봐. 그런데 지금 상황은 그보다 못했다. 줄어든 대화도 그렇고, 자꾸만 숙여주는 병찬도. 예전의 행복했던 시간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이야 날카롭게 구는 정도지만 더 심해지면. 그러다 병찬의 마음에 상처라도 입힐까 그게 무서워졌다. 아니, 서로 싸우다가 병찬의 미움을 사는 게 무서워졌다는 게 맞았다. 이렇게 된 건 전부 자신의 욕심 때문인 것 같았다. 농구를 다시 하고 싶다는 마음보다, 병찬과 헤어지고 싶지 않아서 재활에 매달렸던 자신의 욕심 때문에 이런 관계가 된 것만 같았다.

 

미처 다 닿지 못한 커튼 사이로 빛이 들어왔다. 동이 터오고 있었다. 그것을 가만히 보던 상호가 몸을 일으켰다. 커튼을 닫아 새어 들어오는 빛을 가렸다. 욕심을 버릴 때였다.

 

 

 

 

 

상호를 병원에 데려다주기 위해 준비하던 병찬을 상호가 불러세웠다.

 

 

“햄, 저…. 구단, 나갈까 봐요. 재활도 계속 길어지고….

“…구단에서 나가래?”

“아뇨, 그건 아닌데…. ”

“그럼 왜…?”

“…확신이 없어요. 전에는 재활하고 나면 다시 예전처럼 뛸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제는 잘 모르겠어요. 자꾸 우울해지기만 하고, 몸은 뜻대로 안 따라주고. 자꾸 바닥으로만 가는 것 같아서…. 햄한테도 자꾸 날카롭게 굴고….”

“그럼, 재활 포기하는 거야?”

“…네. 그럴까 봐요.”

“…농구 그만둘 거야, 상호야?”

“….”

 

 

상호가 입을 꾹 다물었다. 농구와 함께 병찬에게 헤어짐을 듣기 전 마지막 말이라 생각하니 도저히 입이 열리지 않았다. 차마 병찬의 얼굴을 볼 수 없어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숙였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야 침묵을 깨듯 상호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겠어. …그럼 농구 그만두면 하고 싶은 건 있어? 아니지, 지금 당장 이렇게 말해도너도 잘 모르겠구나. …우선은 집에서 쉬면서 생각해보자. 돈이야 내가 벌면 되는거고…. 아예 이 기회에 이대로 결혼하는 것도….”

 

 

생각지도 못한 말에 상호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헤어지자고 안 해요?”

“…뭐? …헤어지자는 얘기가 지금 왜 나와?”

“그야…. 햄은 농구 안 하는 저는 좋아하지 않을 테니까….”

“뭐…?”

“…햄은 농구가 가장 중요하잖아요. 그러니까 재활도 견딘거고…. 햄의 1순위는 농구니까.”

 

 

황당하다는 듯 상호를 바라보던 병찬이 눈을 찌푸렸다.

 

 

“이게 무슨 소리야? 아니, 상호야 대체 네 안의 나는 어떤 사람인 거야…. 하…. 아무래도 우리 뭔가 단단히 오해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래, 요새 대화가 적기는 했지.”

“…. 오해요?”

“그래, 오해.”

 

 

골치가 아프다는 듯 관자놀이를 문지르던 병찬이 상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진지하기까지 한 얼굴에 상호가 침을 삼켰다.

 

 

“…상호야, 나는 내가 농구 말고 뭔가에 열중할 수 있다는 걸 몰랐어. 그전까지는 인생은 정말 농구가 다였거든. 그 힘든 재활을 견딘 것도, 그렇게 아등바등 대학 가려고 했던 것도. 다 농구 하고 싶어서. 그 이유 하나였어. 근데 어느 순간부터 그만큼 열중한 상대가 나타났어…. 그게 너야, 상호야. 분명 우리가 만난 계기는 농구였을지 몰라. 근데 그건 계기일 뿐이야. 나는 지금의 네가 좋아.”

 

 

병찬의 고백에 상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가 왜 그런 오해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상호야, 나는 작은 칭찬에도 금세 부끄러워하고, 남들 시선을 신경 쓰면서도 붙어있을 때 빨개지는 목덜미도, 아닌 척 다가오는 행동도, 좋아하는 걸 할 때 반짝이는 눈도, 날 볼 때마다 얼굴 위에 맺히는 미소도… 다 좋아. 그게 너라서 다 좋아. 나는 그냥 네가 좋은 거야. 농구를 하든, 하지 않는 너든 그냥 나는 기상호, 네가 좋아.”

 

 

상호의 눈가는 감동이라도 받은 듯 물기로 일렁거렸다. 그런 상호의 볼을 병찬이 감쌌다.

 

 

“…햄….”

“상호야….”

 

 

다가오는 얼굴에 상호가 눈을 감고 병찬의 입술을 기다리던 순간 병찬이 붙잡은 볼을 죽 잡아당겼다.

 

 

“우히 지흠 히흐하 부니기아니어…. 아녀.”

 

 

키스할 분위기 아니었냐는 상호의 투정은 병찬의 눈초리에 바닥으로 꺼졌다.

 

 

“그래서.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는지 들어나 볼까?”

“해앰, 아하요….”

 

 

작게 한숨을 쉰 병찬이 상호의 볼을 놓아주며 재차 질문했다.

 

 

“왜 그런 생각을 한 건데?”

 

 

얼얼한 볼을 부여잡으며 상호가 입을 열었다.

 

 

“그게….”

 

 

상호의 말이 이어질수록 병찬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해갔다. 황당하다는 표정부터 골 때린다는 표정까지.

 

 

“아이고, 상호야.”

 

 

괜히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얌전히 있는 상호를 병찬이 안아 토닥였다.

 

 

“다 큰 줄 알았는데…. 아니지, 이번에는 나도 좀 잘못했네. 나는 농구 얘기를 계속하면 네가 의욕이 더 생길 줄 알았거든. 상호한테는 그것보다는 관심과 사랑이 더 필요했는데 그것도 모르고 말이야.”

 

 

상호가 슬쩍 눈을 피했다.

 

 

“…재활을 계속하라고 했던 건, 상호 네가 나보다 더 농구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였어. 너, 네가 농구 할 때 얼마나 즐거워 보이는지 알아? 코트 위에서 제일 즐거워 보이는 게 너야, 상호야. 너는 내 1순위가 농구라고 했지만, 사실은 네 1순위가 농구였을 걸? 이러니저러니 해도 누구보다 훈련에 열심히 임하는 것도, 열심히 상대팀을 분석하는 것도 너잖아. 매번 제일 늦게까지 남아서 슛 연습하고.”

“그건, 제가 농구선수니까…. 그리고 햄도 늘 같이 남아있었잖아요.”

“상호가 끝까지 남아있으니까 그랬지. 물론 상호가 내가 부른 거 듣지도 못할 정도로 열중하기도 했고 말이야. 집에는 같이 가야 하잖아? 그리고 농구에 대한 추억이 대부분인 건 너랑 나랑 둘 다 농구선수인데, 그게 당연한 거지. 고등학교 때부터 우리 둘 다 쭉 농구 해왔는데 말이야.”

 

 

장난스레 웃는 얼굴에 상호가 눈을 굴렸다. 그런 상호를 보던 병찬이 상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상호야, 아까도 말했다시피 나는 너라서 좋은거야. 농구는 계기일 뿐이었고. 아마 나는 네가 농구를 하지 않더라도 결국 너를 만나서 너를 알아가고, 너라는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을거야. 그러니까 이제는 그런 생각은 그만해. 알았지?”

“…네.”

 

 

잠시 망설이던 상호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햄은, 제가 정말 다시 재활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전처럼 제가 뛸 수 있을 거라고….”

“…. 응, 뛸 수 있어. 조급해하지 말고 하다 보면. 의사 선생님도 잘 나아가고 있다고 했잖아. …원래 뭔가를 되돌린다는 건 오래 걸리고 힘든 일이야. 그것도 우린 시간을 되돌리는 거잖아. 몸의 시간을 다시 예전으로. 얼마나 힘들고 오래 걸리는 일이겠어. 그래도 하루하루 그렇게 쌓아가다 보면 조금씩 바뀔거야. 힘든 만큼, 오래 걸린 만큼 돌아올 거야. 네가 원하는 대로 뛸 수 있게 될 거야, 상호야. …나는 이 잠깐의 시간으로 네가 농구를 놓지 않았으면 좋겠어. 누구보다 농구를 좋아하는 너니까.”

 

 

병찬의 말을 곱씹던 상호는 좀 더 생각해보겠다는 말을 남기고 방으로 들어갔다. 밤이 찾아와 병찬이 침대에 누울 때까지도 상호는 고민이 많아 보였다. 괜한 소리를 했나 싶어 걱정하던 병찬에게는 다행히도 다음날 상호는 재활을 다시 해보겠다는 말을 전했다. 재활을 다시 시작한 상호는 전보다 더 단단해 보였다.

 

 

 

 

 

체육관 안으로 사람들이 들어찼다. 주말 경기라 꽉 채운 관중석에는 빈 자리가 없을 정도로 꽉 채워져 있었다. 경기 시작 전 몸을 풀기 위해 구단의 선수들이 하나둘씩 코트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준비 운동을 마친 상호의 등장에 진행자가 마이크를 들었다.

 

 

“너무나 기다렸던 No.6 기상호 선수가 코트를 밟고 있습니다. 부상을 딛고 일어선 기상호 선수에게 응원을 전하는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홈팬들의 박수와 환호성이 울려퍼졌다. 몸을 풀던 상호가 응답하듯 농구공을 들어 몸을 움직였다. 깔끔하게 들어간 레이업 슛에 옆으로 병찬이 다가왔다.

 

 

“몸 상태는?”

“최고예요. 오늘 경기는 꼭 이겨야 하는 거 아시죠?”

“그럼. 누구 복귀전인데. …가자, 상호야.”

“네, 햄.”

 

 

몸을 데우기 위해 유니폼 위로 입고 있던 티셔츠를 벗어던졌다. 복귀 후 첫 경기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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