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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bbit_chaeyi
cy
“햄,”
“응 상호야 왜?”
“그거 알아요?
손톱에 봉숭아 물 들이고 첫 눈 올 때까지 남아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대요.”
“그런 게 있어?
우리 때는 좋아하는 애 이름 종이에 써서 자기 책상 밑에 붙여놓으면 이어진다는 거였는데.”
“오,옛날사람.”
“뭐임마?”
“ㅋㅋ 그럼 햄도 그거 해봤어요?
종이에 좋아하는 애 이름 써서 붙이는 거.”
“형은 그런 거 관심없었다~ 농구하기도 바빴어 형은 ㅋㅋ. “
“와 진짜 예상을 안빗겨나가네요.
그럼 학교 다닐 때 형 이름 쓴 사람은 있었어요?”
“응? 어 있었지 한 4…명? 근데 왜?”
“암것두요. 그냥 궁금해서.”
“그냥이 아닌 것 같은데? ....아~상호 너,요즘 외롭구나? 아이고 아직 어리다 어려~”
“아 그런 거 아니에요 ㅡㅡ”
“아니긴 뭐가 아니야 임마ㅋㅋ 평소에는 애니얘기 농구얘기만 하는 놈이.”
“저 애니얘기 그렇게 많이 안하거든요?”
“그래 외로운 상호야~ 미안하지만 형은 여소 못해준다~”
아 진짜로 그런 거 아닌데.
기상호는 정작 본인이 소개받고 싶은 건 박병찬이라는 말을 목구멍까지 끌어올렸다가 다시 식도로 넘겼다.
괜시리 기분이 뚱해져 소파에 바르게 붙이고 앉았던 등을 잔뜩 내렸다.
상호의 허리가 몸 망가진다고 신호를 보냈지만 그는 애써 모른체하며 자세를 유지했다.
기상호 나름의 삐졌다는 어필이였다.
그마저도 후배의 등건강을 걱정한 건지 아님 그저 자신을 놀린 상호에게 복수하는 건지 상호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누운 채로 티비를 보며 발을 뻗어 등을 꾹꾹 눌러대는 박병찬때문에 의해 다시 바르게 앉아야 했지만.
기상호는 본인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발을 들이미는 박병찬이 조금 미웠다.
내가 누구때문에 물어본건데.
고등학교 1학년때부터 시작해 대학교 2학년까지.
도합 5년동안 박병찬을 짝사랑해온 기상호는 억울했다.
아무리 여자한테 관심이 없어도 그렇지, 햄들이랑 합숙할 때도 좋기는 커녕 불편했어서 평범한 헤테로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지금 내 옆에 누워서 프로농구중계나 보고 있는 형이 내 첫사랑이라니.
과거에 박병찬을 만나기 전에 자신에게 외치고 싶다,왜 하필 박병찬이냐고, 왜 하필 내가 부상을 악화시켰던 선수를 좋아하게되었냐고.
왜 그날 혼자 체육관에서 연습을 한 거냐고.
주변에 좋은 사람이 없어도 어떻게 저를 그저 5살먹은 어린애로만 보는 친한 형한테 반할 수가 있냐고.
하지만 이렇게 따져도 과거의 기상호에게 닿을 리 없다는 것을 알기에 스무살의 기상호는 열여섯의 기상호를 향해 고함치는 것은 그만두고 얌전히 스물 여섯이 된 박병찬을 흘끔흘끔 쳐다보았다.
박병찬. 26살. 직업은 대학농구선수.
과거 무릎부상으로 인해 21살까지 고등학교를 다녔던 사람.
무릎부상임에도 무리하게 시합을 뛰다가 한 번 더 부상당한 사람.
끈기와 무모함의 아이콘.
최종수와 비견될 에이스.
극강의 ENFP.
과에서,아니 대학에서 박병찬 모르는 사람 찾는 게 더 힘들다는 사람.
그리고 기상호의 짝사랑 상대이자 대학선배인 사람.
아니 이게 사람이 맞냐고,애니 주인공도 이런 설정이면 욕먹는 요즘시대에 하물며 2D도 아니고 존재하는 사람이라니.
새삼 기상호는 박병찬이 정말 애니 속 주인공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사람이니까 숱하게 고백도 받고,길에서 일행과 있는데도 번호 따이고.
이런 사람이 학교 다닐 때 인기 없었으면 그게 이상한거라고 머리로는 인정되면서도 다시 생각하니 괜히 울컥해져서 고개를 반대로 돌리게 된다.
아 박병찬 진짜 짜증나.
나는 남자라서 햄한테 고백,하다못해 스킨십하는 것도 망설이는데 햄은 그것도 모르고 학창시절에 고백받았던 거 연애했던 거 막 얘기하고 동기 여자애들이랑 맨날 만나서 밥 먹고, 주변 남자애들한테 여소시켜준다그러고, 여사친들한테 맨날 고백받고 선물받고.
기껏해야 나는 햄이랑 할 수 있는 게 우연히 같이 동거해서 햄 연애사업 도와주고 연애상담해주고, 햄이 술마시고 집에 데려온 친구들이랑 어색하게 인사하고 방들어가는거 뿐인데.
계속 생각하자니 기분만 더 나빠져서 보던 중계를 뒤로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기상호는 박병찬이 중계 더 안보냐고 묻는 목소리에 피곤해서 자러간다고 짧게 대답하고서는 문을 닫고서 침대 위에 엎어졌다.
괜히 동거 수락했나 싶다가도, 박병찬이 아니였으면 꼼짝없이 통학신세였을 거라는 걸 알기에 애꿎은 공아지인형-박병찬 닮았다고 기상호가 술취해서 사온 인형이다-이마에 딱밤만 날렸다.
나도 첫사랑은 안 이루어진다는 거,게다가 그 대상이 남자면 99.9784%로 안이루어진다는 거 아는데,그래도 속상한 건 속상한거라고.
이게 다 햄 때문이야, 왜 그렇게 잘해주냐고 사람 헷갈리게.
내가 햄 짝사랑 포기할라치면 귀신같이 알고 꼬시는데 누가 안넘어가겠냐고.
누가 친한 남동생한테 레스토랑에서 밥 사주고,손크기 재보자면서 손잡고,뒤에서 안고, 그런 행동 하는데 진짜로.
그런 거 다 사람 꼬시는 행동인데 진짜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하고. 진짜 모르는거야 뭐야? …아니 애초에 햄이 날 연애상대로 봤으면 그런 거 안했을 테지만 그래도!
다시 생각하니까 또 화나네.
박병찬 진짜 유죄야.
침대에 누워 박병찬을 향한 불만을 잔뜩 웅얼거리고서야 만족한 기상호는 다음 날 새벽 6시 알람을 맞춰놓고 잠에 들었다.
아 몰라, 내일 준수햄한테나 안까였으면 좋겠다.
.
.
.
.
.
.
.
“야,기상호 집중 안 하지?”
“아뇨!”
“빨리빨리 안뛰어?”
햄 와저러는데. 아침훈련부터 저를 향해 성질을 부리는 성준수를 애써 무시한 채 기상호는 속도를 높여 정희찬과 속도를 맞추고선 물었다.
“햄 저러는거 한두번도 아니고, 평소랑 같은데 뭐가.”
정희찬은 그런 상호의 물음에 고개도 돌리지 않고 대꾸했다.
“아니 맞긴 한데 평소보다 기분 안좋아보인다고;;”
“니만 그렇게 느끼는 거 아이가? 아니면 니가 햄한테 잘못한 게 있어서 햄이 니한테만 그러는거겠지.”
“내 암것도 안했는데…”
희찬의 대답에 기상호는 움찔하면서도 잘못한 거 없다며 중얼거렸다.
(실제로 최근에는 그렇게 사고를 치진 않았다.)
아 말걸지 마라 내도 힘들다 지금;;
기상호의 말에 대충 대꾸해주다가 어느새 상호와 나란히 달리기 트랙 8바퀴를 돈 정희찬이 벽에 붙어앉았다.
기상호도 숨을 몰아쉬며 정희찬의 옆에 나란히 붙어앉았다.
“아 그러지말고 뭐 짐작가는 거 없나?평소에는 이정도는 아니였는데.”
“그야 평소에는 병찬햄이…아,병찬햄 오늘 오후에나 훈련 참여해서 그런갑다. 평소에 병찬햄 있으 땐 준수햄이 적당히 했지 않나.”
“?그랬나?”
“그랬다.병차이 햄이 훈련 끝나고 준수햄이랑 따로 훈련했어가지고 준수햄도 그거 할 체력은 아꼈으니까.”
“아…”
어쩐지…아침훈련에 병찬햄이 없어서였구나.
기상호는 희찬의 답에 고개를 끄덕이고 납득했다.
근데 햄 나랑 같이 나왔는데?
“그럼 오늘 햄 어데갔는데?”
“내가 어떻게 아는데? 니가 알겠지.니 햄이랑 같이 살잖아.”
“내도 모른다. 아침에 햄이랑 같이 나왔는데 햄 학교로 안가고 딴길로 가던데.”
“그럼 재활받으러갔나보지.”
“맞나.”
뭐꼬,니가 내보다 햄 더 잘 아는 듯.
괜히 머쓱해져 희찬을 보며 웃는 상호를 보고서 정희찬은 한숨을 쉬었다.
“내가 알면 뭐하는데, 니가 알아야지.니 어제 안물어보고 뭐했는데?”
“햄한테 물어본다고 햄이 대답 다 해주겠나...”
“안봐도 비디오다. 니 또 햄한테 니혼자 삐쳐가지고 말도 못 붙이고 잔다고 걍 방들어갔제?”
“히차이 니 우리집에 씨씨티비 달아놨나;;무섭다.”
“니 하는게 거기서 거기지.으휴…됐다 말을 말자.”
정희찬의 타박에 아무말도 못하고 기상호는 바닥만 내려다봤다.
아니 내도 햄한테 물어보고 싶은데 입이 안떨어지는 걸 내보고 어떡하냐고…
잘하는 짓이다,니가 드라마 여주냐 혼자서 드라마 찍고 앉아있게;;
아니 저것들이?
“야 니네…!”
“형아 왔다~”
두 사람이 싱겁게 말다툼하는 걸 본 성준수가 둘을 향해 소리치려다 문 뒤에서 들리고 박병찬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 인사를 했다.
“형 오셨어요.”
“준수 하이~오전 훈련 막 끝났나보네?”
“네.형 재활받으시고 오신거죠. 그럼 형은 오늘…”
성준수가 박병찬이 오늘 봐줄 부원들을 말하려다 박병찬의 손톱에 시선을 꽂았다.
“...형 손에 그거 뭐에요.”
“아 이거?재활하고 오전훈련 끝내기까지 시간 남아서 손톱에 색 좀 칠했어. 잘 나왔지?”
박병찬이 웃으며 제 손을 들어 성준수에게 주홍으로 물든 손톱을 보여줬다.
“.....네….”
성준수는 어이가 없었지만 농구할 때 거슬리는 건 아니였기에 그냥 짧게 대답만 하였다.
“형 오늘은 희찬이랑 쟤네 3명만 봐주세요.”
“상호는 준수 네가 맡게?”
“네,쟤 요즘 근력이 줄어든 거 같아서 제가 보려고요. 야,기상호. 넌 오늘 나랑 개인 훈련한다. 헬스장에서 운동할거야.”
“네?”
“왜,싫어?”
“아아아뇨!”
“그럼 빨리 와, 시간 없으니까.”
“넵…”
성준수의 부름에 기상호가 스윽 일어나 성준수를 따라 헬스장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상호 힘내~ 운동 화이팅!”
해앰…기상호는 박병찬의 응원에 한껏 불쌍한 표정을 지었으나 곧이어 들려오는 성준수의 목소리에 후다닥 달려갔다.
햄,이따 살아서 뵐게요.
상호가 준수를 따라 헬스장으로 넘어가자 그제야 박병찬은 흔들던 손을 내리고 희찬을 불러냈다.
“희찬아~오늘은 내가 너 봐줄거야.”
“넵!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오냐 ㅋㅋ
웃으며 답하는 박병찬을 보며 90도 인사를 하려던 정희찬이 병찬의 손톱을 보고서는 의아한 얼굴이 되었다.
뭐지 저건? 어제는 없었던 것 같은데?
“어? 햄 손톱에 뭐에요?”
“아,이거~ 형 재활하고 시간 남아서 봉숭아물 들였어. 잘 들었지? 다이소에서 세트로 팔더라.”
“아니 잘 들었긴 했는데 갑자기 봉숭아물은 왜요? 햄이 혼자 한 거에요?”
“아니, 뭐랬지 그 봉숭아물 들이고 첫 눈 올 때까지 유지하면 첫사랑 이루어진다며? 그래서 해봤어.진짜로 되나 궁금해서.”
“네?형 좋아하는 사람 생겼어요? 누구에요? 아니 그보다 햄 그런 거 믿으셨어요?”
“원래는 안믿었는데, 나도 이번에는 믿어보고싶어서.”
세상에,이거 어떡하냐… 햄이 첫사랑이 생겼다고? 그럼 그 전에는 다 진심이 아니였던건가? 이걸 어떻게 얘기하지?
기상호에게 이따가 햄의 손톱에 대해 뭐라고 얘기해야할지, 상호의 짝사랑을 유일하게 아는 정희찬은 머리가 복잡해졌다.
어라?근데 그러면 햄은 누구한테 그 이야길 듣고 저걸 한 거지?
아니 그보다
“근데 인터넷에서 첫사랑은 안이루어질 확률이 99.9784%라던데요,햄?”
“그래도 0.0216% 정도는 가능성이 있잖아, 그거면 충분해.”
남은 확률은 내가 채워넣지 뭐.
…근데 수치 너무 정확하지 않아?
원래 인터넷은 이상한 데에서 정확하던데요.


